2017년 5월 10일 수요일
Clive Barker, Books of Blood vol. 4
글쓰기 지겹네 이거;
여튼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연작 제 4권, [The Inhuman Condition]임.
[The Inhuman Condition]이야기가 조금 덜 완결되어 있는 편인데 이 단편은,
여하간... 대충 심심하면 노숙자들 패고 다니는 동네 양아치들이 어느 날
재수없이 걸린 아저씨를 털다가 뭐 쓸만한 게 있는지 뒤적거리던 중에
희한한 매듭을 발견해.
일정한 패턴으로 묶어놓은 줄을 다시 풀어내는 식의 퍼즐이 있는 모양이지?
이게 영국에서만 나름 애호가들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주인공 소년이 그런 부류였고, 이 녀석이 이 매듭을 요리조리 풀다 보니
이게 사실 뭐... 신비스러운 물건이었던 거지. 괴물을 부르는?
아마 <헬레이져>의 원형이 여기 있었던 걸까?
신비로운 퍼즐이라는 소재 말이야.
술술 잘 읽히기는 하는데 그렇게 건질 내용이 있었던 건 사실 아니긴 해.
특히 결말이 조금 흐지부지라는 인상이라서.
[The Body Politic]
야 이거 재밌더라.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인 찰리 조지라는 중년 남성의 '손'이 자의식을 갖게 된 거야.
양손은 끊임없는 예속상태와, 보잘 것 없는 짓거리나 맡아줘야 하는 현재의 상태에 불만이 쌓여 있었던 거지.
그래서 주인이 잠든 사이에 두 손이 계속 격론을 벌여. 자유를 얻어야 한다고.
여기까지 읽으면서는 손이 팔을 떠나면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재미가 있었던 듯 한데,
여튼 소설의 세계에서는 그게 가능하다는 식으로 전개가 되더라고. 뭐 그래줘야 재미있긴 하겠지.
그래서 먼저 탈출한 왼손이 다른 손 동지들을 찾아가는 거야. 손의 혁명이지;;
결말에서는 손의 군대가 일종의 메시아였던 주인공의 오른손을 모셔가려고 우르르 몰려오는데...
간단히 정리는 했는데, 이게 정말 재미있었던 단편이었던 이유는
내 신체가 내 의지에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당혹과 공포를 꽤 잘 그려내서였던 것 같아.
꼭 호러 소설에만 고유한 특성은 아니겠지만,
사실은 말도 안되는 상황설정을 꽤 설득력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게 소설의 힘이고 작가의 재능인 것 같거든.
나도 읽다가 햐 나도 저렇게 되면 이렇게 경악하겠지 싶어서 문득문득 내 손을 한번씩 쳐다보게 되더라고.
상황의 설정도 흥미롭고, 전개도 제법 흡입력있고. 재미있고.
아마도 <이블 데드 2>가 이 단편을 좀 참조했을까?
자의식을 가진 손이라는 소재가 아주 흔할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크레이지 핸드>라는 작품까지 나왔던 저 소재가 샘 레이미의 것이라고만 여겼었네.
정확한 내막은 모를 일이지만.
[Revelations]
이 단편은 읽으면서 굉장히 흥미로웠던 게,
연극을 염두에 두면서 써낸 소설인 것 같더라고.
설정은 시간은 폭우가 내리는 날 밤이고, 장소는 미국의 외딴 모텔.
인물은 전도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수행원, 모텔 주인과 그 딸,
그리고 전도사 일행이 묵게 된 방에서 죽었던 남자와 그를 쏘고 사형당했던 여자, 이 부부의 유령.
대강 몇시간 정도 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랄 것도 없는 자잘자잘한 상황들의 연쇄가 소설의 내용이야.
아마도 유령이 등장한다는 것 때문에 장르소설로 분류될법 하지 꽤 잔잔한 내용이기도 하고.
이야기는 저 전도사가 그야말로 꼬장꼬장하고 독선적인 기독교도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축으로 진행돼.
예를 들어 자기 아내가 자기한테 지칠대로 지쳐서 진정제를 먹는 것조차 힐난해야 하는 인간이었던 거지.
그리고 유령 부부는, 남자는 난봉꾼이고 질려버린 아내가 그를 권총으로 쏴서 죽였던 역사가 있는 부부인데
희한한 섭리의 결과로 하필 소설의 무대가 되는 그 날, 그 역사적(?) 장소에서 부부 사이의 화해를 위해 만났던 거지.
그런데 전도사의 아내가 방에서 희뿌연 형상들을 보게 되고...
결말이나 유령 아내의 캐릭터라던가 등등 해서 뭔가 억압되던 여성의 해방 같은 주제를 다룬 것도 같은데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꽤 신선한 형식과 전개라서 재미있게 읽었어.
클라이브 바커가 연극 쪽에서 몸을 좀 담았던 모양이긴 하더라고. 1권에서도 눈치는 챘었지만.
[Down, Satan!]
이거는 거의 5쪽정도 분량의 짧은 단편이라 할 말은 많지 않은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주인공이 어느 날 자기가 믿음을 잃었다는 걸 깨달아.
그리고는 아무리 기도를 하고 성직자를 만나도 신이 자기를 돌아봐주질 않는거야.
그래서, 계획을 세워. 사탄조차 군침을 흘릴 악의 소굴을 꾸미고 거기서 사탄을 기다리는 거지.
사탄이 그를 만나는 순간, 신 또한 그에게 주의를 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그때 비로소 그는 신을 만날 것이라는... 뭐 그런 계획인데,
꽤 희한한 상황설정이지?
[The Age of Desire]
이거는... 내 짧은 식견으로는
대강 늑대인간 이야기나,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류의 이야기에 한 자리를 마련할만한 단편같은데,
나름 신선한 포인트는 여기서 늑대인간이 된 인물은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최음제를 맞아서
성욕의 화신이 되어버린 인간이라는 거지.
뭐 남녀도 안가리고 그냥 박아버리는 괴물이 된 거야;
중간에 잰 체하고 다니던 수사관이 있는데 냅다 박아버리는 장면이 있거든. 피식 하게 되더라고.
할 말이 많이 떠오르는 단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재미있는 소재이기는 했지. 발기한 하이드 씨라니;
책을 바꿨다는 기분때문인지 작가 본인이 뭔가 집필과정에서 성장이 있었는지
이전의 세 권보다 훨씬 더 몰입해서 읽은 것 같아. 책이 짧기도 했다지만 꽤 후루룩 읽어냈네.
어차피 장르소설에서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딨겠어. 정말 재밌게 읽은 것 같네.
2017.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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