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올리는 감상문.
사실 며칠 전 부로 2권까지 읽었는데 이걸 가지고 뭐라고 끄적인다는 게 또 일이더라고.
막상 보면 개발괴발 글이거늘.... 글쓰기의 지난함이여! (하고 폼을 재본다)
2권을 읽으면서 희한하다고 여겼던 것은
우리나라에 출간되었던 이 피의 책 연작이 두 권이었는데,
두 번째 출간된 권이었던 [요괴 렉스]가 연작의 3권을 번역한 것이었다는 사실이야.
왜일까? 2권에 어떤 문제라도 있었던 것일까?
독서를 마친 후의 내 생각은 아마도... 출판사 측에서는 2권이 썩 재미있지 않다는,
그래서 판매량에 영향이 있을 것 같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
그렇게 큰 출판사도 아니었고 (아마 지금은 없어진...듯?) 책을 낸다는 건 어쨌든 모험인 셈이니까.
다시 말해 내 감상은 2권이 그렇게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었다는 거지.
[Dread]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을 정말 많이 읽고 싶었어.
왜였는지도 기억 안나지만 뭐 아마 어딘가에서 추천을 들었던 거겠지.
더하여... 제목의 심플함을 봐. 대체 저렇게 단도직입적인 제목을 가진 단편은 어떤 내용을 말해줄까?
두려움이라니... 어떤 기기묘묘한 이야기로 나를 매혹시켜주겠냐 이 말이야.
이야기는 대강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져.
주인공 스티븐, 퀘이드, 셰릴. 이 세명은 대학생인데, 퀘이드라는 인물은 좀 독특한 철학을 가졌어.
뭐... '두려움'의 탐구자? 철학자? 같은 거지. 인간의 실존은 두려움을 바탕으로 하고,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우매한 자들을 자신이 '두렵게 해줌'으로써 계몽시키는? 뭐 그런 삐딱한 인물인 거지.
개인적으로는 여기서부터 조금 핀트가 어긋난 기분이었는데
대뜸 플라톤이나 벤담 따위는 한량의 주절거림 정도라고 비웃는 모습이 되려 나에게는 꽤 같잖아 보였기 때문이야.
인물과 그의 언행이 독자인 나에게 공감을 못 불어넣더라고.
여하간 제법 자기주장이 강한 채식주의자 셰릴과,
어릴 적의 일시적인 청각장애로 트라우마를 가진 스티븐이
이 퀘이드에게 '계몽'되는.... 내용이 대강의 줄기인 것 같네.
기대가 컸는데 거기에 부응이 안되어서 좀 객관적인 판단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첫 번째 단편부터 조금은 실망스러운 독서였어.
특히 결말부는.... 음.... 홀로 고고히 '가르침을 준다'는 미명 하에 남을 괴롭히고 앉아있던 인물이
제대로 당하는 모습은 나름 고소한 맛은 있었지만,
이 소설은 애초에 그런 골계를 겨눈 작품은 아니란 말이지;
의도에서 벗어난 감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조금 엇나가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돼, 나는.
[Hell's Event]
런던에서 자선 행사로 경주대회가 열려.
거기에 참가한 달리기 선수들이나, 그걸 보며 환호하는 관중들 그 누구도 몰랐지만,
이 대회는 이면에서 사실 지옥과 지상 사이의 건곤일척의 대승부였던 거지.
(물론 자기 정체를 숨긴) 지옥 대표선수가 승리하면, 지옥이 지상 위에 펼쳐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뭐... 소설에서는 100년? 이라고 한 것 같은데 잠시동안은 다시 인간세가 이어지는 거지.
음... 이 간략한 줄거리만으로도 뭔가 너절한 느낌이 좀 있지 않아?
내가 더 그렇게 보이도록 간추린 것은 같지만 말야.
아마도 이 단편은 다분히 일상적이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심지어 주인공이 몇 번이나 환기를 하거든, 이건 별것도 아닌 자선행사 경주일 뿐이라고)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그런 비틀림에서 착안한 소설이지 싶어.
지옥의 사자라는 애들이 심각한 척 하면 할수록, 일상적인 경주 대회라는 대비 속에서
꽤 희한한 인상을 주는 거지.
하여... 뭘 하려고 했는지는 대강 알겠는데, 아주 매력적인 단편은 사실 아니었지 싶네.
[Jacqueline Ess: Her Will and Testament]
이 단편은 제법 괜찮았어.
재클린 에스는 평범한 가정주부야. 지긋지긋한 일상에 지친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고 있던 힘을 깨닫게 돼. 그녀는 뭐라고 하지 그걸? 사이코키네시스? 였던 거지.
죽어버리라고 생각하면 정신과 의사가 목이 픽픽 꺾여 죽고, 뭐 그런 것.
이런 '힘'을 깨닫게 된 그녀는 이 힘을 어떻게 행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배워나가고, 결국 뭐... 좌절하기도 하고.
이렇게 풀어보니 역시 범속한 이야기이지 싶지만,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이거였어.
그 원형을 내 식견으로는 정확히 지목하기는 어렵지만
19세기-20세기초에 소설에서 많이 등장했던 인물의 유형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보바리 부인]으로 대표되는 억눌린 가정주부들이 있는 것 같거든.
이 소설은 내 생각에는 그런 일종의 클리셰를 비틀어 놓은 소설 같아.
권태를 느끼던 가정주부가, 힘을 얻고, 그 힘을 자각하고는 심지어 중반에는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배우기 위해 소설 세계관에서는 손에 꼽힌다는 거부를 찾아가기도 하거든.
권력의 행사를 배우기 위한 거지.
그 힘 때문에 그녀 주위의 남자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게 되고, 그래서 매혹당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와 인간이 지닌 권력에 대해 염두를 두고 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네.
[The Skins of the Fathers]
아... 이 단편은 책을 들기 시작한 뒤로 가장 별로인 단편이었는데....
이야기에 축이 없어.
인물도 많고, 사건도 많은데, 정합성도 없고, 결말도 흐지부지야.
아리조나 사막에서 괴물들의 습격을 받은 한 마을...이 그럭저럭 주요 소재인듯 한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사업가? 회사원?의 이야기가 섞이고
그 괴물들에게 강간당해서 괴물의 아이를 낳은 여자와 그 아이의 이야기가 섞이고
그러더니 결말부에서는 그냥 아이도 죽고, 대뜸 괴물들에게 희한한 능력이 있었다는 식으로 다 처리되고,
정작 괴물들은 그냥 사라졌다...는 식이고.
이 단편으로 뭘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네 나는.
굳이 짚을만한 점이라면 괴물들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비틀림 정도일까?
[New Murders in the Rue Morgue]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포우의 유명한 단편을 염두에 둔 편이야.
사실 난 포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았거든. 이 편을 읽으려고 예비독서로 포의 단편까지 읽게 됐네.
포우의 단편은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는데
이 이야기가 가진 대단한 역사적 가치는 둘째 치고서라도
나는 이렇게 기능적이기만 한 이야기가 썩 매력적인 것 같지 않거든.
그리고 자기 혼자한테만, 그리고 자기 홈그라운드(자신이 주인공인 소설) 안에서만
딱딱 맞아 떨어지는 짜고치는 고스톱에서 판돈 따가는 인물인 주제에
잘난척이나 하는 탐정류 캐릭터(바로 이 뒤팽이 원조라는)도 좀 재수없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포우도 이 소설이 그렇게 찬사를 받는 걸 조금 이해 못했다는 걸 줏어읽은 것도 같고.
여하간, 이 단편의 기본적인 설정은
주인공 루이스의 할아버지의 동생이 오귀스트 뒤팽이었다...는 거야.
엥? 이거 완전 김전일 아니냐?
그렇다고 대뜸 루이스 소년의 사건부가 펼쳐지는 건 아니지만.
시간적 배경은 소설이 쓰여질 당시의 현재인 것 같아, 80년대이고, 주인공은 이미 노쇠한 70대 노인이지.
노년에 회화로 예술계에서 명망을 얻게 된 주인공은 젊은 시절 친구였던 필립이 살인죄 누명을 썼다는 소식을
필립의 동생 캐서린에게 전해듣고, 어떤 내막이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파리에 도착하는 거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향수를 진하게 뒤집어 쓴, 면도날을 지니고 다니는 거구가 자꾸 모습을 드러내고...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에서는 범인...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그 인물의 동기가 굉장히 이해가 안 갔는데, 그게 꽤나 열쇠가 되는 지점이라서
결국 단편 자체가 조금 아리송한 기분이 있어.
애초에 일종의 원작이 존재하는 패러디물인 상황에서
원작에 대한 큰 존경이 없는 나로서는 거기서 어떤 맛을 찾기도 어려웠고.
하여 아주 흥미로운 독서는 아니었던 것 같네.
2권의 감상을 이렇게 대강 끄적여 봤지만,
드디어 읽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었지 아주 즐거운 독서는 사실은 아니었어.
안타까운 일이네;
지금까지 읽으면서 특기할만 했던 건,
읽는 속도가 꽤 잘 붙는 책이라는 거야.
아마도 작가인 클라이브 바커가 글을 많이 꼬지 않고 묘사 위주의 서술이 많은 탓일까?
20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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