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0일 수요일

아서 C. 클라크 독서경험을 써보는 글

SF라는 장르 자체에 관심이 크지는 않지만
어쨌든 살면서 문화생활좀 하려다 보면 뭐든 그물에 걸리는 게 있기 마련이고
그 중 아서 C. 클라크는 뭐, 3대 SF 작가니 뭐니 하는 소리까지 듣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읽어본 이사람 작품은
[라마와의 랑데뷰], [유년기의 끝],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이었는데
사실 읽은지 다들 좀 오래돼서 세세한 내용은 사실 좀 가물가물 하다.

왜 그런 소리 하잖아, 인간의 기술발전은 어마어마 하지만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은 몇천년 전과 비교해서 그렇게 진화한 것도 없다고.
이걸 다시말하면 중세시대 갓난아이를 어느 대도시에 떨어뜨려 놔도 그냥 잘 살 거란 얘기잖아?
아니면... 뭐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크나큰 단절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그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기술의 발전이나 역사의 연속성 때문에
어떤 '최선'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현실을 사는 인간은 그 현실에 파묻혀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거지.
타임머신같은 게 있어서 선택권이 주어지면 예를 들어 기대 수명이 30세도 안되는
중세 동유럽 농노보다는 유토피아적인 근미래의 부호, 아니면 심지어 빈부의 격차조차 없어진
과학이 이뤄낸 공산주의적 사회? 같은 데서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겠어?
개인의 차원을 떠나서 뭔 플라톤적 철인정치의 극단적 형태같은 게 성공적으로 부여될 수 있다면
인류는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을 넘어서 뭔가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겠지?
국가는 용해되고, 그 사회의 모습도 많이 다를 것이고, 등등...
이런 상상력을 좀 더 밀고 나간 거지 싶어, 말하자면.

즉 이 작가는 '최선'을 인간에게 부여하고 싶어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냉전 시기의 작가답게 냉전과 핵전쟁의 공포에 굉장히 민감했던 것 같은데
그런 무의미한 소모를 그만 두고, 인간이 가진 가능성의 극한을 끌어올려 보자는 거지.

근데 난 이게 좀 맘에 안 들었다. 이 외계 문명이라는 소재? 는 두 가지가 참 별로였는데
일단 작가의 생각이 저런 식이니, 외계인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기어들어 오는 것도 꽤 기능적이라고 느꼈어 난.
걔들은 인류를 계몽하려는 의지 외에는 없는 한없이 선한... 존재들이야? 기독신이야? 천사들이야?;;;
그리고... 그래서 인류를 구원씩이나 해주신다 이거야? 착한 짐을 진 백인들이야? 인류는 우가우가 하고 있는거야?

거기다 그렇게 해서 좋은 게 좋다며 난 결론, 이 작가의 '최선'이라는 게
결국 60-70년대 LSD 마리화나 히피냄새 나는 '정신세계' 따위인 거야?
나도 식견이 짧지만 이런걸 뉴에이지라고 부르지 않나?
꽤 혐오받는 생각 아니던가 이거?
글쓰다보니 갑자기 막 부아가 치밀어오르네;

[2001]같은 건 영화로도 워낙 유명하다 보니까
개인적으로 조금 더 관심이 있었던 게 사실이야. 영화 좋아한다고 깝치던 적도 있다보니까.
이거는 국내 출간된 책 부록이었던가? 거기에 뭐 스타맨인지 뭔지가 된 주인공이
지구의 핵무기를 모조리 없애버리는 엔딩을 기획했었다는데 진짜 놀랄 노자다.
그따위 '기계장치의 신'같은 걸 생각해야 할 만큼 인류와, 역사를 얕보고 있다는 느낌이 난 좀 들어서.
내 생각인데 큐브릭이 정말 큰일 했을거야.
그 안씻은 기름뜬내 잔뜩 나는 히피 긴머리를 예쁘게 빨아내고 깎아내 줬으니.

여튼 악다구니를 부려 놨는데 내가 느낀 감상은 그래.
대충 흐리멍덩한 선문답 하는 건 그걸로 족해야지.
난 사람의 일은 사람만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저런 식으로 외계 문명이 무슨... 인류를 뭔 바늘코에도 못앉을 이상한 걸로.... 어후; 더 말하기도 싫다.

저런 류의 생각에 내가 좀 불쾌를 크게 느끼다보니 저래 말해 놨는데
여튼 내 지금까지의 아서 C. 클라크 독서경험은 그랬다.
그 덕에 앞으로도 굳이 이사람 책을 더 찾아 읽을 일은 없지 싶고.

2017.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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