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3일 목요일

서경석, 전투감각

월남전 당시 파월 맹호부대에서 소대장 및 중대장으로 복무했던 서경석 예비역 중장의 저서이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후배 군인들에게 '전투감각'을 고양시켜 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집필을 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전투경험을 가진 지휘관이 이미 드물었을 91년에 이런 저서를 펴냈을 때는
휴전 이후 몇십년을 보낸 군대가 기강이 해이해지고, 안일해졌다는 판단이 조금은 숨어있을까?
어찌되었건 주적과 대치하고 있는 군이니만큼, 예리한 감각을 벼려내는 데 보탬이 되고자하는 군인정신일는지.

저자 본인이 머리말과 꼬리말에서 한번씩 밝히고 있듯 저자가 문필가는 아니다보니
그다지 글맛이 좋은 편은 아니다. 문장이 불완전할때도 있고, 글의 흐름이 유기적이지 못해 지리멸렬한 부분이 제법 되고,
같은 표현이 계속 반복되거나, 문단의 배치가 애매해서 올바른 이해를 저해한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종종 눈에 띄었다.
아마도 실전에서 저자 본인이 느꼈던 주요한 전술이나 태세 등과 실제의 경험담 혹은 무용담이 뒤섞이다보니
더 그런 인상을 주는 것 같다. 글의 성격이 교범도 아니고 수기도 아닌 것이 좀 아리송한 구석이 있으니까.
이따금씩 글의 방향이 소위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뭐 여하간 이해못할 일은 아니다.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 제법 세세한 것이 아마도 일기가 있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였다. 일기에 쓰인 내용을 토대로 해서 거기에 살을 좀 붙인 구성인 것 같다.

나로서는 이 독서가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잘 이해가 가지 않거나
군인도 아닌 내가 이렇게 자질구레한 부분까지 챙겨 읽어야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크레모아 관리의 중요성이나 평소 훈련의 강조, 여자가 더 독하다는 저자의 인상이나 포로 처분 방식 등등
계속 반복되어 나오는 내용들은 저자의 부족한 글솜씨 탓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기도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일반인 중에서라도 밀리터리 계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대단히 흡족하게 읽을 것 같다.
소대나 중대 규모에서 실제 전투가 어떻게 행해지는지, 졌는지에 대한 서술이 빼곡하기 때문에.
과연 전투 수행에 있어서 어떤 점이 중요한지 되짚으며 강조하는 대목이나
본인이 겪었던 경험담을 풀어내는 내용들은 실제 전투가 과연 이런 식이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조금 갸우뚱 했던 건 책에 그려진 저자의 모습이 제법 이상적인 군인상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건데
실제로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평판을 받았던, 뛰어난 군인이었기에 본인의 경험을 서술한 것 뿐인데도
그런 상이 그려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전투감각'이라는 의도도 있는 마당에 애써서 지저분한 내용을
서술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현지인들과 교류를 나눠야 한다는 내용이나 적이 먼저 쏴야 우리도 쏜다는 등의 이야기는 너무 옳고 좋기만 한 얘기같아서.

조금 의문이 드는 대목도 하나 있는데 13장인 '마이 여인'을 읽어보면
매복 작전 중 휘하의 병사가 매복이 들킬 수 있는 상황이어서 부득이하게 한 베트남인 여성을 쏘게 되는데
풀어주자니 발각될 위험이 있어서 데리고 있었으나 그녀는 결국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그녀의 남편이 그녀를 찾으러 왔다가 그 또한 총격에 목숨을 잃게 되는데(이 둘은 무고한 민간인은 아니었다)
여인이 자신에게는 자식이 있다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던 말도 들었던 저자 본인으로서는 이런 결말이 대단히
씁쓸했고, 그로 인해 이후 악몽도 빈번하게 꾸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장에서 서술된 작전 하에서 사망한 인물은 이 두 명인데 265쪽을 보면
"시체를 끌어다가 마이 여인을 묻었던 자리를 파고 합장해주었다. 나무로 십자기를 만들어 머리 쪽에
박아놓았다. 시체를 찾아다가 장사를 잘 지내주라는 표시였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바로 아래에
"약 2시간 가까이 개울을 따라 철수했을 때 우리가 매복했던 지점에서 폭음이 발생한 것을 청취했다.
시체를 뒤지다가 시체 밑에 매설한 수류탄 부비트랩이 터진 모양이었다."라는 문장이...?
비록 전시였기는 하나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 예우를 표하려 했다는 것 같은데
거기에 부비트랩을 설치해 뒀다는 건가? 못할 거야 없겠지만서도...

대강 눈치를 보니 내가 읽은 판은 91년 판과 비교해서 뒤에 두어 장이 더 붙은 형태인 것 같은데
특히 마지막 장이 자계서 냄새를 피워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아무도 이 책에서 저자의 경험담과 전투에 관련한 일정한 조언들 이상을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의 군인으로서의 글이 읽고 싶을 따름인 것을... 아마 저자도 그를 모르지 않았을 터인데.

그런 의미로 말하자면 더 거슬리는 것이 말미에 저자가 월남전을 보는 시각도 조금 애매한 구석이 있다.
이미 참전한 전쟁에서 용맹하게 싸운 저자의 기상에 딴지를 걸 생각은 전혀 없다.
기왕 베기로 한 것이라면 칼은 날이 서 있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아마 혁혁한 전과만 올린 저자의 경험담이 서술되어 있으니 전투는 이렇게 이겼는데 전쟁엔 왜 진 거야? 하는
의문을 독자가 품을 수도 있으리라 저자도 짐작했고, 그래서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월남전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혀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조금 갸우뚱하게 되는 건데,
간단한 예를 들어 "월남 내부의 철없는 종교인"이라거나 "민주화라는 명분으로 정치 싸움만 반복했다" 등의 서술을 읽으면...전투의 프로페셔널인 저자가, 대뜸 아마추어 역사가나 정치가 흉내를 낼 필요는 없었지 않을까... 싶어 지는 것이다.
뭐 아무래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군인이란 직업과, 심지어 공산군과 전투까지 벌였던 인물의 시각이 이렇다는 게
나는 너무너무 불합리하고 부조리하다고 생각해서 참을 수가 없다 말하는 것도 우습기는 하겠지만.

독서 이후에 간단히 관련 내용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저자가 소총중대장으로 복무할 당시 직속상관인 대대장이 노태우 중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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