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계몽주의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읽다 보니 자연히 각 사상가의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첫 타자는 드니 디드로가 되었다. 이전에 독갤에서 그의 [수녀]를 추천하는 글을 보기도 했고.
이 작품은 밀란 쿤데라가 그렇게 극찬을 했다는 작품이기도 하니...
계몽사상가의 저서를 읽는다면 보통은 흄, 칸트 등을 읽거나
프랑스인 중에서라면 볼테르, 혹은 루소가 먼저 떠오르지만 오히려 그런 의미에서 평범(?)해 보이는
그에게 왠지 관심이 갔던 것.
드니 디드로는 저명한 계몽사상가이자 백과전서파의 수장격 인물인데
2017년 현재의 대한민국을 사는 내게는 무언가 특색없는 인물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사상의 내용이나 영향이 시공을 넘어 나에게까지 울림을 줄만한 구석이 있는지
사실은 조금 아리송하기 때문에...
소설로 분류되는 책이기는 한데, 구성이 꽤 독특하다.
주인공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자크와 그의 주인인데,
이 둘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화자의 존재가 굉장히 부각되어 있다.
대뜸 대화 중간에 화자가 끼어들어서 논평을 하는 부분도 많고,
어떤 때는 심지어 가상의 독자의 목소리까지 끼어들어서
예를 들어 "그런 것은 부당하다!"라고 외치면 거기에 화자가 대답하는 등...
이런 방식으로 통상 '소설'이라 불리는 장르의 관습이 꽤나 훼손되어 있는 느낌인데
이런 자유로운 글쓰기 방식을 역자는 책 말마의 해설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적 글쓰기를 선취한다는 식으로
설명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그런 설명은 내 생각에는 수레를 말 앞에 둔 격이 아닌가도 싶다.
개인적으로는 아마 '소설'이란 문(文)의 장르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나쁘게 말하면 혼란스럽고
좋게 말하면 다채로운 시도가 있었던 따름이지 않을까. 1700년대 후반에 쓰인 소설이니까.
특히 화자(저자)가 서사에 끊임없이 개입하는 것은
(심지어 중간에 자크와 그 주인의 이야기를 옆으로 제쳐두고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글쓰기'라는 행위를 대하는 자의식이 표현된 것은 아닌가 생각되는데
당장 이런 별 것 없는 독후감을 끄적이는 나조차도 느끼는 이 '글쓰기'의 지난함과 어려움이
정제되지 않은 것처럼 정제되어 표현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 희한하지만 부연하자면 디드로는 연극 배우론을 쓰면서 거기에 최고의 배우는 혼자 감동을 받아서
끅끅거리는 연기를 하는 인물이 아니고, 자신의 몸짓과 발성이 어떤 효과를 낼지 전부 파악하고 있는,
오히려 자신의 연기로 표현하는 그 감정에는 멀찍이 떨어져서 계산적으로 연기할줄 아는 인물이여야 한다는
내용을 적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게 글의 직조에서도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해보자면...
하여 중간에 화자는 자신은 당시의 통속적인 혹은 저자 본인이 열등하다고 느낀 다른 작품의 전개 방식을 예로 들며
자신은 그런 방식으로 글을 전개시키지 않고, 오직 사실만을 적어놓겠다고 엄숙하게 선언하기도 하는데,
주인의 입을 빌려 역사에 도덕적 훈계를 섞지 말라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지도(p.82) 모르겠다.
여하간 그런 것 치고는 전혀 '사실주의적'이지 못한 이 글의 얼개가 도리어 저자 본인에게는 대단히 사실적인 글쓰기의 방식이었다는 의미라면
여관 여주인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계속 삽입되는 여관 일꾼들의 방해를 예시로 들자면
저자는 그런 방식의 글이 '이야기를 한다'는 행위의 진정한 형태라고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사실주의'적인 소설들의 형태는 오히려 화자가 이야기를 하고, 독자는 그것을 편하게 몰입하여 읽는
의외로 대단히 인공적인 글의 마당(?)을 펼치고 상정해놓는다는 점에서 부자연스럽고 비사실적이라는 일종의 주장이기도 한 건가?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웠던 점을 하나만 더 들자면
소설의 화자는 자신이 이야기를 하는 그 시간과 장소에 함께 입회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자크와 주인이 저 멀리로 사라지니, 우리는 잠시 이 이야기도 멈출 수밖에 없겠다...는 식의 서술이라던지.
바로 위 문단에서 말한 것처럼, 과거형으로 서술하는 이 '화자'의 존재가, 그 설정이, 생각보다 꽤 부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환기가 되는 독서 경험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크는 제목에서 저자가 명시해 놓았듯이 운명론자인데,
계속해서 어떤 사건의 향방은 이미 '위에서 쓰여 있다'고 말하는 점에서 그렇다.
사건의 연쇄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입장이 결정론이라면
그것이 어떤 주재하는 섭리(그것이 신일 수도 있고)에 의함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운명론일까?
여하간 재미있는 점은 자크는 그렇게 입버릇처럼 (본인이 말하기로는 후렴구) '저 위'를 말하지만,
즉 자신은 더 높은 원리나 법칙에 의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지만
그럼에도 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무릅쓴다는 점이다.
특히 초반부 여관에서 악당들과의 조우에서 그걸 볼 수 있는데
악당들을 혼내주고 나서 돌아온 자크에게 주인이 그들이 덤비지 않을 지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그는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해보기 전까지는 몰랐다는 것 아닌가.
자신의 의지와 그 실행에 방점을 찍는 운명론자라는 건 꽤 흥미로운 설정이라고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자크 본인의 입으로도 '두루마리가 풀리는 것'이라는 비유를 쓴 것이다.
위에 쓰여 있는데, 두루마리를 풀어 봐야 쓰여 있는 줄 안다는 것.
자크와 그 주인은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는데 (그게 어디인지 화자는 한사코 밝히기를 거부한다)
그러는 도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으나
작중 인물들 자신의 말대로 본성에 의해, 자크는 말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고
주인은 듣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인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특히 자크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자크의 사랑 이야기가 큰 화두이다.
그런데 이 사랑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런 저런 자잘한 사건에 의해 그 얼개를 풀어내는 것을 방해받고
사이사이에 다른 이들의 이야기나 대화 등이 삽입되면서 계속해서 지연된다. 고도?
그리하여 온갖 이야기들이 뒤범벅이 되어 있는 소설인데,
기억에 남는 것들을 추려 보자면
역시 으뜸은 포므레 부인의 복수극이 되겠다.
이것은 두 주인공이 여관에 묵게 되었을 때 그곳의 여주인이
다른 객실에 묵은 두 명의 사정을 전해들었다며 다시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전달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포므레 부인이 자신을 배신하고 외도를 한 아르시 후작에게 복수하기 위해
창녀를 고결한 여인으로 포장시켜 그가 그녀에게 반해 결혼하게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서술을 마치고 화자는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데 그녀의 처사가 극악무도하다고 하겠지만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남자들은 그보다도 작은 일을 가지고도 결투를 벌여 남의 몸에
칼을 꽂을 것이라 설명하는 부분은 제법 진보적인 시각이지 않나 싶기도.
더하여 아르시 후작의 이야기나 이후 위드송 신부의 이야기 등으로 미루어
당대 귀족이나 성직자들의 부패와 가식을 묘사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도 같다.
특히 주인이 수도승들을 비난하는 부분이나(p.70) '두루마리를 쓴 자'를 욕하는 부분(p.120)을 보면
계몽사상가답게 기독교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보이는 듯도 하다.
주인공인 자크는 자기 주인에게 대단히 무례한 행동을 많이 보이는데
매를 맞을 기분이 아니라고 대든다거나 주인에게 계속 깐족거리는 장면들이 있다.
여주인의 여관에서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중 그 상대가 되는 여성의 정체가 밝혀지는 데에서
그녀를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그녀를 찬탄의 대상으로 생각하던 주인이 "너 같은 녀석에게 그녀가..."라는 식의
말을 하자 거기에 화를 내 주인과 방에서 나가라, 싫다로 옥신각신을 벌이는 장면은 그 극치일 것이다.
이 장면의 결말은 여주인이 그들의 방으로 올라와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후 둘이 맺게 되는 약정에는 자크가 모든 업무를 맡을 능력을 지니고 있고 주인은 나약할 따름이라
오히려 실권은 자크에게 있고 주인은 그를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건 소위 주노의 변증법이 아닌가? ㄷㄷ;
뭐 이런 거창한 소리를 떠나서도 하인인 자크의 언행은 피식피식 하게 만드는 데는 있었던 것 같다.
감상은 이정도로 하고,
책이 대량 500쪽정도 되는데 그 중 70쪽 정도가 역자 해설이니 대단히 두툼한 구성이다.
대단히 혼란스러운 구성의 소설인데 덕분에 흥미롭게 정리도 잘 한 것 같다.
위에 쉰소리 한마디 적어놨지만 역자 해설에 들인 노고가 제법 대단했으리라.
그걸 읽고도 내 감상이라며 사족을 달기도 조금은 우습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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