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3일 수요일

드니 디드로, 배우에 관한 역설

당장 루소나 볼테르처럼 계몽사상가들은 연극이라는 예술장르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연극이란 꽤나 대접받았던 장르였던 모양.
여기서 드니 디드로도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던 것이겠고 본인이 희곡을 써서 상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디드로가 연극과, 특히 배우의 연기에 관하여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는 짧은 책이다.

플라톤의 본이 있어서인지 근대 사상가들이 대화체 저술을 자주 시도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디드로의 책을 읽으면서 그게 사실이었음을 실감한다. 이 책 또한 두 명의 대화 형식을 띠고 있다.

이것으로 디드로의 책을 읽은 것도 몇 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 건
기대보다 흥미롭지 못한 독서가 된다는 인상인데 그건 아마도
번역이 좋지 않거나,
원문 자체가 난삽하거나,
저작의 주제의식에 내가 공감하지 못하거나,
저자가 드는 사례나 사용하는 용어 등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등등일 터이다.

이번 독서로 문득 들은 생각이지만 디드로의 글은 대단히 당대를 밀착해 있다는 느낌이다.
이미 잊힐대로 잊혀진 정치가, 작가들의 일화나 예시들이 빈번하여 글을 따라가기 버겁다.
이건 인상일 뿐이니 어느 글은 안그렇겠냐 하면 답하기 애매하긴 하지만...

더하여 디드로가 좀 난삽한 글을 쓴다는 평은 꾸준히 있어왔던 모양으로
2류 작가 취급이나 받다가 재평가를 받은 것이 생각보다도 최근의 일이라 하니
(그나마도 그 재평가의 골자가 '글쓰기의 혼란상'을 체화한 작가라는 식의,
이현령비현령식 불란서 비평가 말버릇같은 것이 되어놓으니 나는 조금 도끼눈을 뜨게 된다)
내가 느끼는 이런 곤란도 아주 근거가 없지는 않은듯 하다.

여하간 이 책의 기본 골자는 이런 물음이다.
"가장 뛰어난 배우란 어떤 존재인가?"
요컨대 배우라는 직업에 있어서의 '이데아'는 어떤 특질을 지녀야 하는지를 묻는 것인데
디드로의 주장은 뛰어난 배우는 자신이 보여주는 감정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멀어져서
냉정하게 자신의 몸짓을 계산할 줄 아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판단력이 좋고, 냉정하고 침착한 관찰자로서 통찰력은 요구되지만 감성은 전혀 요구되지 않는 인물이다.(p19)
이를 바탕으로 하여 배우의 재능이란 '느낌'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감정의 외부적 기호들'을 알맞게 토해냄에 있다.(p.30)
배역의 감정이 배우 자신의 것인 양 취해서 몸부림치는 모습은 단적으로 우스꽝스럽기 때문.

여하간 디드로는 이를 "자연 그대로의 배우"는 형편없다고 설명하는데
그렇다면 자연-인공(문화?)의 이분법이 여기서 적용되는 셈이겠고 디드로는
연기의 기술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주장하는 것이겠다.
무엇보다도 배역의 감정을 배우 스스로 느끼는 방식의 연기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배우를 지치게 만든다는 점과 그것이 재연 불가능하는 점이다.

눈여겨볼만한 점은 그렇다면 인위적인 관습의 연마가 유의미해지는 근거가
하나는 극장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이라는 점인데 연기의 패턴은 일상생활의 패턴과는 확연한 차이를 갖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연기 톤으로 몸짓을 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 취급이나 받기 마련이다.(p.35) 반대도 마찬가지겠고.
더하여 영국/프랑스의 극장 풍경, 즉 희곡들의 성격이나 그 문화 하에서의 연기 관습이 다르다는 점(p.19) 또한
연기를 단련함이 유의미한 이유가 된다. 즉, 관습이란 것이 실존하는데 이는 문화의 내부와 외부에서 관찰 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든다. 그 관습이라는 것 자체가 18-19세기 유럽 연극에 국한된 현상일 뿐일 텐데
당대의 과장되고 정형화된 연기는 현대의 지배적인 매체인 영상물에서의 연기와 판이할 수밖에 없겠고
현대의 연기는 '배역 속에 녹아드는' 것이 더 뛰어남을 측정하는 기준이 되지 않나?
그런데 이건 사실 조금 잘못된 질문인데 현대 영화 등에서의 뛰어난 연기 또한 결국 우리가 관객으로서 관찰한
연기의 뛰어남, 소위 그럴싸함이고 그래서 그 연기와 감정에 공감을 한 것이니
'관찰자에게 감정을 불어넣는다'는 기본 도식을 상한 것은 아니기 때문.
당장 디드로 본인데 이런 관습이 변화 불가능한 것은 아님을 인정하고 있다.(p.36)

그러므로 제목이기도 한 배우의 관한 역설이란
'전형'으로서의 이상적 배우는 가장 거짓말을 잘 하는 인물이고 그러기 위하여 가장 무성격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상적 OO'을 정의함에 있어 '가장 ~한 존재'라는 기준이 배우라는 직업? 기예?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것들에-배역/감정) 가장 ~하지 않은 존재'여야 한다는 성격, 이것이 배우에 관한 역설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 신입생 때 과 활동으로 연극 배우를 해본 일이 한 번 있었다.
그때 느꼈던 것이 이와 똑같았는데 내가 느끼는 그대로 해서는 공감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분노의 감정을 연기할 때도 정말 실생활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화낼 때처럼 새된 소리를 질러서는
그걸 곁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그저 새된 소리만 빽빽 지르는 소음일 따름이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줏어읽은 것이지만 영화감독 샘 레이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가 카메라를 들고 찍을 때와 찍힌 내용을 볼 때는 느낌이 너무 다르더라고.
그래서 화면 연출에 있어 어떤 기법의 창안 혹은 습득과 그것의 연마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이것은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매체의 숙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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