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2일 화요일

마사오카 시키/나쓰메 소세키 - 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

이런 책이 일본에도 따로 있는 건 아니고, 역자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소세키와 시키의 서간?들 중 큰 의미 없는 편들을 제외한 후 시간과 전달순서에 맞추어 발췌 번역해 한 권으로 구성한 책이다.
오히려 소세키 전집과 시키 전집을 번갈아 뒤적거려야 하는 수고를 역자가 대신 해준 셈.

개인적으로 마사오카 시키는 나쓰메 소세키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재했던 [호토토기스]를 창간한 인물로,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의 책에서 몇 번 언급되었던 사실 정도로 그저 이름만 알던 사람인데
나쓰메 소세키와 깊은 교우를 나누었던 인물인 모양이다.
일본의 시가 갈래인 하이쿠와 단카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인물로서
오히려 문명은 먼저 떨친 모양인데 결핵으로 인하여 요절한 인물이라고 한다.

책의 구성은 이 둘이 22세였던 1889년부터 34세였던 1901년까지 주고받았던 편지들과,
1902년 시키가 사망한 이후 소세키가 다카하마 교시에게 보낸 편지 한통,
[고양이] 중편 서문에 소세키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내용까지가 실린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아는 소설가 소세키의 삶은 그가 영국유학을 다녀온 1903년 이후 [고양이]를 연재하면서부터이니
여기 실린 글들은 소세키에게 관심을 두고 책을 들었던 나로서는 일종의 '소세키 비긴즈'(?)인 셈이다.

편지의 분량도 소세키의 편지가 훨씬 많은데 역자는 소세키는 이사가 잦은 생활을 했고
시키는 이후 시키암이라 불렸다는 근거지에 자리를 잡은 뒤로는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받은 편지를 보관하기가 시키 쪽이 용이했고, 그래서 소세키의 편지가 많이 남은 것이라고 설명해주고 있다.
아쉬운 일인 것이, 시키의 편지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이 소세키의 답장만 실려 있는 경우도 제법 되기 때문.

책을 펼치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 두 명이 대단히 인용에 능란하다는 것인데, 일단 한문의 인용이 굉장히 두드러진다.
과연 19세기의 끝자락을 살았던 인물들이라 그런지 문(文)에 대한 감수성이
현재를 사는 독자와는 많이 다르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된다 할까...
헌데 이런 사정이라면 사실 소위 구한말 문인들의 글도 다르지는 않을 터라면
굳이 소세키의 글을 내가 찾아서 읽었다고 할 때는 이게 사대주의인 건가? 하는 자의식이 살짝 들기도 한다.
여하간, 더하여 특히 영문학자였던 소세키의 글에서는 영어의 구사나 인용도 제법 섞여들어가 있는데 이게 꽤 희한하다.
과연 소위 근대문학의 태동기에서 그 '사이'를 살던 인물의 글이라는 것일지? 글맛이 독특하다.

나머지 하나는 과연 친우끼리의 서간 내왕이어서인지 넉살 좋은 문구들이 많았다는 점인데,
이게 읽기에 재미있다.

서로를 치켜세울 수 있을 만큼은 전부 치켜세우고 있는데 사용하는 단어만도
'대인', '오우(梧右)', '님', '대형', '좌하(座下)', '어전(御前)' 등등...

거기에 두견새는 당시 결핵의 대명사로 여겨졌다 하고 시키(子規)의 필명도 여기서 유래했다 하는데
시키가 각혈을 한 후 문병을 갔다가 보낸 (지금까지 남아 있는) 소세키의 첫 편지에서
본인의 셋째 형도 각혈을 했다며 "이리 두견이가 많아서야 천하의 풍류가라는 이 몸도 두 손 들밖에, 하하."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혹은 반 장난, 농담 식으로 서로를 깎아내리는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한데
대뜸 소세키는 시키에게 "자네같은 냉혈동물은 더위도 겪지 않겠지"라는 식으로 말하거나
잠을 즐기는 것이 어디가 나쁘냐고 묻는 소세키에게 시키가 답장에
"늦잠은 건달, 낮잠은 도둑으라 이미 평판이 정해져 있는 것을 득의양양 으스대다니 가소롭구먼."하며
놀리는 부분이라던가는 친우끼리는 서로 놀려대는 모습이란 게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기도.

1890년 1월 초에 보낸 편지에서 23세의 젊은 소세키가 품었던 '문장'에 관한 생각을 잠깐 엿볼 수 있는데
아마 이 전의 편지에 시키가 나름의 문장론을 써서 보냈던 모양인데 이에 반박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후 그의 생각이 어떤 방식으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 따르면
문장은 그것이 담은 사상(내용)과 그 문장의 수사(형식)로 대별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서 소세키 본인이 더 중시하는 것은 사상인데 이를 함양하기 위해서는 작자가 몸담은
문화적 풍경과 작자 본인의 경험이 중요하며 차등을 두자면 전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여 Idea와 Rhetoric이 좋고 나쁨에 따라 총 4개의 경우가 생기는데 특기해야할 사항은
사상이 좋고 수사가 나쁘면 기껏해야 평범한 문장으로 그치지만 사상이 나쁘면 수사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 나쁜 문장으로 귀결되므로 사상이 나쁘고 수사가 나쁜 경우와 동급이 되니 사상의 중요성을 강조할 수 있다고
소세키는 보냈던 것 같다. 젊은이의 치기어린 정리에 불과할 지는 모르겠으나...

이에 시키가 다시 반박을 하고 있는데 조금만 인용하자면 이런 식이다.
"그런데 어째서 Good idea expressed by bad rhetoric과 Bad idea expressed by good rhetoric은 그 가치가
거의 같다고 하지 않는 것인가.[몰아붙이기 성공하여 통쾌]"
이렇게 하고 싶은 반박을 대강 하고는 뒤에 괄호로 한두마디 자평을 하는데
이게 읽기에 제법 우습다.

적어두고 싶은 부분.
1895년, 28세 되던 해 11.13일자 소세키의 편지에 최근의 사건 중 다행스러운 것이 '왕비 살해'라고 되어 있는데
이게 민비 살해 사건을 의미하는 모양이다. 무엇이, 어떻게, 왜 다행스러웠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1897년 2.17일자 시키의 편지 서두.
"뺀들거린 것도 뺀들거린 것이지만 바쁜 것도 바쁜 것이므로 오랫동안 격조했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바쁜 것도 바쁜 것이라 붓은 놓지 않고 있네.
위가 나쁜 것도 나쁜 것이지만 바쁜 건 또 바쁜 것이니 많이 먹고 있다네."
문장이 재미있어 적어놓아 본다.

1891년 11.7일자 소세키의 편지를 보면
시키가 권한 호걸담을 읽고 실망한 소세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실수담이 호걸의 전기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호걸의 명성이 실수담을 유명하게 한 것에 불과하네."라고
적고 있는데 이게 꽤 재미있는 논리의 역전이라 흥미롭다.

전반적으로 책에 큰 불만은 없는데, 이런 책을 냈다는 것도 감지덕지인 마당이라,
몇몇 경우 연도 표기가 오류가 있고 (1895년인 게 분명한데 1995년이라 되어있다던지)
312쪽의 'gay society'가 아마도... '게이 모임'이지는 않을 듯한데 그렇게 번역을 해놓았다는 것
정도가 눈에 조금 밟힌다. 더하여 둘 사이의 서간만을 실어놓았기 때문에 전후맥락에 관한
내용이 조금 아쉽다는 것 정도? 이런 내용까지 작성하는/기대하는 건 역자로서도 독자로서도
약간은 월권행위가 될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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