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2일 화요일

지노 에이이치, 외국어 잘 하는 법

제목이 강렬한 책이다. 제목만큼 내실있는 책일지?

저자는 일본의 언어학자로 체코어가 전공이고 그걸 중심으로 다른 슬라브어계열 어군을 연구한 사람인 모양이다.
저자 본인이 직접 경험하거나, 스승들에게 혹은 지인들에게 전해듣거나, 다른 인물들의 저서를 읽거나 하여
자기 나름대로 언어를 배운다는 일은 대강 이런 것이다...하고 전해주려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뭐 언어학이나 심리학 등의 어떤 이론적 기반을 가지고 쓴 책은 아닌데,
덕분에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복잡한 이론이나 도표를 인용하는 건
오히려 독자가 정나미만 떨어지기 십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저자는 서두에서부터 "잊어버리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접한 외국어라고 해봐야 영어, 일어, 독일어 정도에 불과하지만
언어라는 게 결국 암기싸움으로 귀결되고 그러면 다시말해 망각과의 싸움이 되는 것이니
한창 열내면서 단어니 문법이니 익혀놓고도 뒤돌아서서 며칠이면 물거품처럼 없어지는 걸
허망하게 느낀 게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고 보면 꽤나 재미있는 조언이다.

꽤나 공감갔던 대목 중 하나는 언어를 배우는 것은 필요에 의함이라는 저자의 주장이었다.
언어란 학습자 본인이 필요해서, 즉 배우고 싶다고 느끼는 이유가, 목적이 있기에 배우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애써서 괴로운 과정이어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대다수는
(80년대의 일본인을 지칭하겠으나 현재의 한국인을 가리켜도 납득할만할 것이다)
제 1외국어의 선택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이 비극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싶어도, 주위에서 영어부터나 제대로 하라는 핀잔을 듣거나,
하다못해 나 자신이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꼴이 심심찮게 발견되는 상황이니...
"배우는 사람이 영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 쪽이 학습자를 고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외국어 = 괴로움'의 등식이 습관처럼 마음 한구석에 달라붙어 독이 되는 것이다.
외국어 학습에서는 뚜렷한 목적의식이 필수불가결이기 때문에.

더하여 외국어 학습의 허들을 너무 높게 잡지 않을 것을 저자는 주문한다.
학습자 본인이 대뜸 해당 언어의 사전 편찬자같은 게 될 것도 아닌 마당에
그 외국어를 배우려는 목적에 맞는 수준과 방식만을 접하면 될 일이라는 것이다.
즉, 외국어 학습에 있어서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마음가짐이 이러한 뒤 세목에 있어서 외국어 습득에는 무엇이 어떻게 필요하냐면
저자는 언어의 신이라는 별호까지 얻었던 지인의 말을 인용한다.
어학을 잘 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간"이 필요하며, 그를 기반으로 "어휘와 문법"을 익히고,
그것은 좋은 "교과서, 교사, 사전"을 통해서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하여 저자는 어휘, 문법, 교과서, 교사, 사전, 발음, 회화, 레알리에 순으로 장을 할애하여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세세하게 더 여기서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고...
예를 들어 단어는 가장 기본이 되는 단어 1000개를 목표로 삼으라는 것이라던가
문법사항은 컴팩트하게 하여 가장 기본이 되는 10장 정도만 일단 눈뭉치를 굴리라는 조언 등
꽤나 자잘하게 와닿는 제안이 실려 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것은 발음 장에서 ザ의 발음에 관련한 대목이었는데
이 글자는 어두에서는 [dza]로 발음하고 모음 사이에서는 [za]로 발음한다는 모양이다.
친한 일본인 선배가 있었는데, 이 선배와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관련한 잡담을 나누는데
'the world'를 발음할 때 'the'를 [za]로 발음하지 않는다는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다.
뭔가 희한한걸? 하고 느꼈지만 이게 한국인으로서는 변별적인 자질이 아니다보니
그렇다고 모국어 화자에게 왜 그렇게 발음하냐고 물어봐야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고
그냥 석연찮은 기분만 느끼고 넘어갔던 일인데 여기서 그 수수께끼가 풀렸던 것이다.
뭐... 제대로 된 일본어 음성학 자료만 조금 찾아봤어도 훨씬 빨리 풀릴 문제였을수도 있으나...

여하간 저자는 아주 명시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않지만
결국 목적의식을 가지고 '꾸준히'를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김빠지는 결론이지만 외국어 학습에 첩경이 있을 리도 만무하니 오히려 새삼스러운 주문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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