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3일 수요일

루크레티우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계몽주의 시대에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저작이다.
더하여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스티븐 그린블랫의 책에서 다루던 중심 소재였는데,
그 제목 그대로 말하자면 (출시제이긴 하지만) '근대를 탄생시킨' 책이라고 하니
대단히 호기심이 동했던 터라, 언젠가 한번은 읽어야겠다고 맘 먹던 차였다.
드디어 읽은 것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조금 실망스럽다.
삶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긍정하는 아름다운 책이었다는... 식으로
'우연히'(위의 책의 원제는 '일탈Swerve'이기도 했고) 이 책을 발견해
멋모르고 읽고는 은은한 기쁨을 느꼈다며 찬사에 찬사를 거듭하던
그린블랫에게 속아버렸다는 느낌도 사실은 없지 않은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책이 설파하는 유물론적인 주장들이
생각보다 이미 무의미하거나, 내게 상식선이라는 게 큰 것 같다.
어떤 원류가 되었던 책이라는 의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저자인 루크레티우스의 전기는 사실상 전무한 모양이고
책은 에피쿠로스의 사상을 대단히 충실하게 설파하는 저서라고 한다.

아마 이 책을 손에 쥐는 사정은 보통은 셋 중 하나겠는데
라틴어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 문장의 맛을 느끼고자 하는 사람이거나
그리스/로마의 철학이나 사상에 전반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그것을 톺아보려는 사람이거나
특정해서 에피쿠로스 사상의 충실한 해설서라는 평가를 받는 이 책을 읽어보려는 사람이겠다.
즉, 소위 전공자들이나 볼 책이라는 건데 여기에 나같은 딜레탕트가 어쩌다 꼬이는 거다.
개인적으론 저 그린블랫의 책도 크게 보면 상통하는 내용이라고 생각되는데
결국 계몽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된 것 같다.

책은 특히 라틴어 원문으로 읽으면 그 시작(詩作)의 수준이 실로 대단해서
그것을 음미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쾌를 주는 모양이고 실제로
이미 당대에 베르길리우스 등의 인물이 시의 높은 수준을 상찬했으며
시인 본인이 본문에 쓰디쓴 약쑥(사상)을 달콤한 맛(시문)으로 감싼다는 식의 비유를 몇 번이나 쓰며
일종의 자화자찬까지 하고 있는 노릇인데다가, 후세에도 그 훌륭한 시문으로
추종자들이 끊이지 않았던 듯하니 과연 높은 수준의 작품인가 보구나 싶기는 하다.

문제는 시가 개인적으로는 와닿지도 않고, 가 닿을 생각도 없는 장르라는 게 하나고
이건 번역본이기에 그 맛을 어차피 느낄 수도 없음이 둘이요,
역자 서문에서 드러내고 있듯 역자는 시의 맛을 살리기보단(이게 가능이나 한지는 둘째치고)
원문에 최대한 충실한 직역을 시도했기 때문에 한국어의 어순과는 상이한 구조의 문장들이
그대로 번역되어 오히려 편하고 즐거운 독서를 방해하는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다는 점이
마지막으로 셋이니 시인이 자화자찬의 낯뜨거움까지 굳이 무마해가며 자랑했던
저 달콤한 시문이 큰 의미가 없는 셈이다.
그러하므로 이 책을 누군가 읽는다면 기대함직한 부분 하나가 사실상 결여된 셈이겠고.

그러면 사상적인 내용을 간취해보려는 의지가 이 번역본 독서를 추동하는 동력이겠는데
이게 또 생각만큼 마음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조금 뒤에 설명한다.

아마 계몽사상가들에게 가장 매력적이었던 그리고 스티븐 그린블랫에게 소소한 충격을 주었다는 부분은
종교와 영혼의 불멸성을 부정하는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다.
18세기의 유럽이나 근본주의가 꽤나 득세하고 있다는 현대 미국의 지적 토양에서
이런 식의 유물론적인 세계관을 접했을 때는 충격 혹은 매혹을 느끼기 마련이지 않을까...

하여 주요 골자를 능력닿는 대로 간추려 보자면,
기본적으로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은 '자연'의 토대를 원자라고 설정하고 있다.
이 원자와 '빈 공간'의 배합으로 삼라만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자들이 서로 부딪히며 운동한다면 그 운행은 단순히 기계적인 과정이겠고
그러므로 일종의 결정론적인 색채를 띠지 않을 수 없다는 건데 에피쿠로스는 이를 부정하려 한다.
2권의 216행부터 이에 관련한 내용이 나오는데 원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일탈하기도 한다는 것.
이로부터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의 '자유 의지'가 연원한다는 설명은 확실히 마음에 혹하는 구석이 있다.

에피쿠로스에게 정신은 인간의 지성작용이고 영혼은 육체에 깃든 생기 따위를 의미하는듯 한데
여하간 정신이나 영혼이란 육체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육체가 소멸할 때 그것들도 함께 소멸하게 된다고 한다. 요컨대 영혼이란
이미 예컨대 기독교적 의미의 존재도 아닐 뿐더러 불멸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죽음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니까.
인간에게 죽음이란 죽기 전에는 살아있으므로 무의미하고 죽은 후에는 모든 정신과 감각의 작용이
정지하므로 또한 무의미할 뿐인 것이다.

5권 110행 이하에서 루크레티우스는 신이 만일 신화가 말해주는 대로 존재하는 것이
그저 우스갯소리에 불과할 것임을 설파하는데 한줄만 인용하자면
"불멸하고 행복한 존재들에게 우리의 감사가 무슨 이익을 늘려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하지만 일리 있는 말이 아닌가 싶은데 개인적으로는.
그러므로 416행 이하에서 설명하듯 세계의 형성에는 어떤 신적인 힘도 개입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종교는 좋게 봐도 무의미겠고,
1권의 60행 부근부터 이야기되는 것처럼 아가멤논이 친딸을 인신공양했던 패륜처럼 크나큰 해악을 낳고
그런 극단적 경우가 아니더라도 뭇사람들을 무겁게 짓누르기까지 하고 있으니
종교를 따름으로써 오히려 죄악을 낳는 이 변태적 상황을 막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시는 말하고 있다.

이런 종교는 5권 1161행 이하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우월한 존재이자
온갖 경이와 공포를 제공하는 자연현상들의 뒤에서 그것들을 관장하는 존재로서의 신을 떠올리게 됨으로써
발생했다고 시는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시의 내용이 납득할만 하고, 그래서 옳다고 여겨진다면
이런 자연현상들은 원자의 운동 이외의 군더더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고 그러므로 신의 존재를
제시할 필요도, 그러므로 그들을 숭배하는 종교를 만들고 믿어야 할 필요도 없게 되는 것이다.

하여 다른 내용들은 온갖 자연현상들에 관한 시인의 해명이겠는데 이런 글들은
크게 마음에 와닿거나 유의미하다 여겨지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고,
대강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두려움을 벗고 삶을 누리라"는 것이 책의 주요한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요약하자면 제법 상식선인 주장을 뽑아내고 보면 너무 두터운 책이었다는 인상이 큰 것.

흥미로웠던 구절들.
5권 705행에 "달은 태양빛에 맞아서 빛나는 것일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게 당대의 천문학 수준을 알 수 없으나 신선하게 여겨지는 건 사실이다.

4권의 말미에 인간의 성교와 관련한 내용이 있는데
아무래도 조금 더... 눈여겨 보게 된 대목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문장이 조금 아리송했다.
인용하자면

그리고 유혹하는 쾌락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취해지는지,
그것도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보통은, 짐승들 식으로,
네발짐승의 방식으로 행하면 아내들이 더 잘
임신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씨앗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으니 말이다, 가슴은 아래로 하고 허리를 들면.
아내들이 음란한 움직임을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왜냐하면 여자는 자신이 임신하는 것을 막고 싸우기 때문이다.
스스로 행복하여 남성의 베누스를 엉덩이로부터 물러나게 하고,
그 흐름을 출렁이는 가슴으로 흐르게 하면.
보습이 제대로 지나갈 부분과 길로부터 쟁기질을
벗어나게 하고, 씨앗의 타격을 제 자리에서 비껴나게 하니 말이다.
그래서 창녀들은 자신을 위해 그런 식으로 움직여 버릇한다,
되풀이 임신하고 몸 무거운 채 눕지 않으려고,
또 동시에 남자들의 베누스 자체가 더 기분 좋은 것이 되도록.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배우자들에게는 전혀 필요 없다는 게 확실하다.

대강 후배를 위로하면 임신이 더 잘 된다고 설명하는 듯하다가
이후의 행에서 대뜸 '음란한 움직임'을 말하는데 이게 도기 스타일을 의미함인가?
그렇다면 '임신하는 것을 막'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그런데 영역본을 보니 문제의 구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It's important how you do it. People generally believe
That wives more readily in the manner of wild beasts conceive,
For it's in this position that the seed can occupy
The right place, with a lowered breast, and with the loins raised high.
Wanton wiggling's of no use for wives - no, not one bit -
For a woman prevents pregnancy this way, resisting it,
When she grinds her buttocks against the man's member as it thrusts,
Gyrating, her whole body turned to jelly with her lust.
By doing this, she turns the furrow away from the straight and true
Path of the ploughshare, and the seed falls by the wayside too.
Whores thus have their own reasons for wriggling - so that they can
Spend less time pregnant, and to make it better for the man.
Clearly, though, our wives can have no use for such an art.

아... 후배위는 임신이 잘되고 기승위는 임신이 잘 안된다는 뜻이구나...
내가 가진 건 펭귄 클래식 판인데 이게 좀 의역을 했는지는 내가 알 수 없으나
영역본으로 이해한 바가 정확하다면 우리말 번역은 문장 구성이 독해를 방해하는 식으로 되어있다는 걸
이 예시에서 충분히 알만 하다. 이 구절만 그런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것이 충실한 번역일지는 모르나 읽기에 좋은 번역은 아니었다는 것을 이렇게 고백한다...

마지막으로, 번역본 기준 287쪽에 오타가 있다.
'뮬리적인 형태'라고 쓰여 있음. (1판 2쇄)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스포) 케빈 브룩스, 벙커 다이어리

  얼마 전에 독갤에서 누군가 추천을 하길래 흥미롭겠다고 생각해서 샀고, 읽었다. 기대보다는 평이했다. 어쨌든 추천사가 '좋다', '암울하다', '충격적이다' 정도의 추상적인 형용사여서야 가끔은 속았다는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