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 10일 수요일

책 자랑


예에전에 발터 뫼어스 얘기가 잠깐 나왔던 게 기억나서
자랑하려고 찍어봄 ㅋㅋ
[푸른곰 선장의 13과 1/2의 삶]이던가?

예전에 독일로 유학갔다 왔던 친했던 선배가 선물해준 책.
내가 발터 뫼어스 좋아한다는 걸 기억하시고는 서점에서 이 책을 샀다고 했다 ㅠㅠ
너무너무 감동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읽었던 작가의 소설 중 이걸 가장 좋아하는데
발터 뫼어스 본인이 그렸다는 삽화나 표지가 예쁜 건 두말할 것도 없고
판형이 묘하게 귀여운데다... 뭐 위에서 말한 개인적인 사연(?)도 있다보니 아끼는 책.
사실, 나는 독어 수준은 정말 낮은 편이라서...
입문 수준 수업도 들은게 반올림해서 10년은 전이니;
뭐 소유 자체가 조금 즐거운 셈이지, 이 책은.
그래도 인생 길게 보면 언젠가는 읽지 않을까? 하는 책이다.

문득 생각이 막 나는데 차모니아 연작이나 조만간 읽을까 고민되네.

2017.4.13

Clive Barker, Books of Blood vol. 4


 글쓰기 지겹네 이거;
여튼 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 연작 제 4권, [The Inhuman Condition]임.


[The Inhuman Condition]이야기가 조금 덜 완결되어 있는 편인데 이 단편은,
여하간... 대충 심심하면 노숙자들 패고 다니는 동네 양아치들이 어느 날
재수없이 걸린 아저씨를 털다가 뭐 쓸만한 게 있는지 뒤적거리던 중에
희한한 매듭을 발견해.

일정한 패턴으로 묶어놓은 줄을 다시 풀어내는 식의 퍼즐이 있는 모양이지?
이게 영국에서만 나름 애호가들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간 주인공 소년이 그런 부류였고, 이 녀석이 이 매듭을 요리조리 풀다 보니
이게 사실 뭐... 신비스러운 물건이었던 거지. 괴물을 부르는?

아마 <헬레이져>의 원형이 여기 있었던 걸까?
신비로운 퍼즐이라는 소재 말이야.
술술 잘 읽히기는 하는데 그렇게 건질 내용이 있었던 건 사실 아니긴 해.
특히 결말이 조금 흐지부지라는 인상이라서.

[The Body Politic]
야 이거 재밌더라.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인 찰리 조지라는 중년 남성의 '손'이 자의식을 갖게 된 거야.
양손은 끊임없는 예속상태와, 보잘 것 없는 짓거리나 맡아줘야 하는 현재의 상태에 불만이 쌓여 있었던 거지.
그래서 주인이 잠든 사이에 두 손이 계속 격론을 벌여. 자유를 얻어야 한다고.
여기까지 읽으면서는 손이 팔을 떠나면 죽는 거 아닌가? 하는 재미가 있었던 듯 한데,
여튼 소설의 세계에서는 그게 가능하다는 식으로 전개가 되더라고. 뭐 그래줘야 재미있긴 하겠지.

그래서 먼저 탈출한 왼손이 다른 손 동지들을 찾아가는 거야. 손의 혁명이지;;
결말에서는 손의 군대가 일종의 메시아였던 주인공의 오른손을 모셔가려고 우르르 몰려오는데...

간단히 정리는 했는데, 이게 정말 재미있었던 단편이었던 이유는
내 신체가 내 의지에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당혹과 공포를 꽤 잘 그려내서였던 것 같아.
꼭 호러 소설에만 고유한 특성은 아니겠지만,
사실은 말도 안되는 상황설정을 꽤 설득력있게 받아들이게 하는 게 소설의 힘이고 작가의 재능인 것 같거든.
나도 읽다가 햐 나도 저렇게 되면 이렇게 경악하겠지 싶어서 문득문득 내 손을 한번씩 쳐다보게 되더라고.
상황의 설정도 흥미롭고, 전개도 제법 흡입력있고. 재미있고.

아마도 <이블 데드 2>가 이 단편을 좀 참조했을까?
자의식을 가진 손이라는 소재가 아주 흔할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크레이지 핸드>라는 작품까지 나왔던 저 소재가 샘 레이미의 것이라고만 여겼었네.
정확한 내막은 모를 일이지만.

[Revelations]
이 단편은 읽으면서 굉장히 흥미로웠던 게,
연극을 염두에 두면서 써낸 소설인 것 같더라고.
설정은 시간은 폭우가 내리는 날 밤이고, 장소는 미국의 외딴 모텔.
인물은 전도사와 그의 아내, 그리고 수행원, 모텔 주인과 그 딸,
그리고 전도사 일행이 묵게 된 방에서 죽었던 남자와 그를 쏘고 사형당했던 여자, 이 부부의 유령.
대강 몇시간 정도 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랄 것도 없는 자잘자잘한 상황들의 연쇄가 소설의 내용이야.
아마도 유령이 등장한다는 것 때문에 장르소설로 분류될법 하지 꽤 잔잔한 내용이기도 하고.

이야기는 저 전도사가 그야말로 꼬장꼬장하고 독선적인 기독교도의 전형이라는 사실을 축으로 진행돼.
예를 들어 자기 아내가 자기한테 지칠대로 지쳐서 진정제를 먹는 것조차 힐난해야 하는 인간이었던 거지.
그리고 유령 부부는, 남자는 난봉꾼이고 질려버린 아내가 그를 권총으로 쏴서 죽였던 역사가 있는 부부인데
희한한 섭리의 결과로 하필 소설의 무대가 되는 그 날, 그 역사적(?) 장소에서 부부 사이의 화해를 위해 만났던 거지.
그런데 전도사의 아내가 방에서 희뿌연 형상들을 보게 되고...

결말이나 유령 아내의 캐릭터라던가 등등 해서 뭔가 억압되던 여성의 해방 같은 주제를 다룬 것도 같은데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꽤 신선한 형식과 전개라서 재미있게 읽었어.
클라이브 바커가 연극 쪽에서 몸을 좀 담았던 모양이긴 하더라고. 1권에서도 눈치는 챘었지만.

[Down, Satan!]
이거는 거의 5쪽정도 분량의 짧은 단편이라 할 말은 많지 않은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주인공이 어느 날 자기가 믿음을 잃었다는 걸 깨달아.
그리고는 아무리 기도를 하고 성직자를 만나도 신이 자기를 돌아봐주질 않는거야.
그래서, 계획을 세워. 사탄조차 군침을 흘릴 악의 소굴을 꾸미고 거기서 사탄을 기다리는 거지.
사탄이 그를 만나는 순간, 신 또한 그에게 주의를 환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그때 비로소 그는 신을 만날 것이라는... 뭐 그런 계획인데,
꽤 희한한 상황설정이지?

[The Age of Desire]
이거는... 내 짧은 식견으로는
대강 늑대인간 이야기나,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류의 이야기에 한 자리를 마련할만한 단편같은데,
나름 신선한 포인트는 여기서 늑대인간이 된 인물은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최음제를 맞아서
성욕의 화신이 되어버린 인간이라는 거지.
뭐 남녀도 안가리고 그냥 박아버리는 괴물이 된 거야;
중간에 잰 체하고 다니던 수사관이 있는데 냅다 박아버리는 장면이 있거든. 피식 하게 되더라고.

할 말이 많이 떠오르는 단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재미있는 소재이기는 했지. 발기한 하이드 씨라니;


책을 바꿨다는 기분때문인지 작가 본인이 뭔가 집필과정에서 성장이 있었는지
이전의 세 권보다 훨씬 더 몰입해서 읽은 것 같아. 책이 짧기도 했다지만 꽤 후루룩 읽어냈네.
어차피 장르소설에서 이것보다 더 좋은 게 어딨겠어. 정말 재밌게 읽은 것 같네.

2017.4.13

며칠 전에 산 책


[피의 책]을 3권까지 읽었으니 나머지도 읽어야지.

내가 산 건 미국판인 듯한데, 왼쪽부터 6,5,4권임.
맨 왼쪽의 [Cabal]은 피의 책 6권하고 [Cabal]이라는 중편이 합본된 구성인데,
왜 그런식으로 출간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네;
대충 보니 영국판에 있는 일종의 에필로그는 또 수록이 안된 모양인데.

우스운 건 저 오른쪽에 있는 4권이 책이 절판되었던 모양이지?
내가 알라딘에서 주문하려고 해보니 이거는 POD에디션이라고 Print on Demand?
출판사에서 스캔본같은 걸 갖고 있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이걸 인쇄해서 보내주는 방식이었나 봐.
그것까지는 그럭저럭 오케이였는데, 실물을 받고 보니 문제가 좀 있더라고.

막 인쇄해서 제본해서 보내준 거라 그런지 좀 불쾌한 잉크 냄새가 나는 게 하나.

그리고 위에 사진에서도 볼 수 있지만, 미묘하게 사이즈가 작음;
기왕 모으는 건데 크기에 일관성이 있어야지!

그리고 제본 방식이라 해야하나 인쇄 방식이라 해야하나... 둘 다인가? 여튼 결정적으로 맘에 안 드는 게
책의 오른쪽 면을 읽는 데는 큰 불편이 없는데

책의 왼쪽 면을 읽으려면 페이지의 오른쪽이 안쪽으로 찝혀있어;;;;
인쇄 자체가 페이지의 왼쪽에 여백이 좀 넉넉하게 되어있고 오른쪽은 조금 좁게 되어있는 거지.
아니 그래도 이런 방식으로 구성해서 출간을 할 정도면
이런 식으로 인쇄되면 좀 불편할 수 있다는 노하우가 쌓여있어야 되는거 아냐?;
아예 찝혀서 읽지도 못하는 수준은 아닌데 끝부분은 쫙 펴서 읽어야 되네 거참 ㅋㅋㅋㅋ


그래도 당장 다음에 읽어야 되는 4권이 이모양이라 다행이라면 다행이네.
빨리 읽어 치워야지.

2017.4.8

Clive Barker, Books of Blood vol. 3

피의 책 연작 3권을 다 읽었다.
과연 완독을 하고 보니 왜 국내 출간이 2권을 건너뛰었는지 알겠더라고.
나로서는 오히려 1권보다도 괜찮았어. 2권에서 느꼈던 실망감이 제법 가신듯.

지금까지 읽으면서 느낀 건데,
호러 소설은 참 희한한 장르일 수 있겠다 싶은 게
별의 별 것들에 인간성이 부여된다는 생각이 들어.
꽤 몽뚱그려서 말한 것이지만 소설의 세계관 안에서 지성이 부여된 존재들은
일종의 의인화인 셈이거든. 저건 인간이 아냐, 괴물이야! 라고 하지만
인간인 작가의 상상력 위에서 펼쳐진 것이라는 점에서 난 결국 그 또한 '인간'이라고 보고 싶어지거든.
그런 식으로 인간 아닌 것이 인간을 모방한다는 모티프가 정말 수도 없이 등장하는 것 같아.

더하여 냉소적인 세계관도 짚어볼 만 하겠네.
호러 소설에서는 인명이 경시되거든.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선 인명이 무엇보다 존엄한 것이니까
결국 호러 소설의 세계는 항상 기묘한 냉소를 품고 있는 거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가볍고, 파국을 맞는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니까.

그러하므로, 호러 소설의 세계는 일종의 애니미즘적인 세계이기도 한 것일까?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가 굉장히 흐릿하고 거기서 한 걸음 나가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의 경계마저 흐릿하거든.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인간이 될 수 있는,
의지... 특히 그 중에서도 악의와 그 악의로 인한 고통으로 만연한 세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을 하나만 더 짚자면,
이게 장르에 일반화될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서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소설이란 장르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거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이 사건들이 펼쳐지는,
또 그것을 묘사하는 리듬이 굉장히 빠른 것 같아.

예를 들면 주인공이 괴물과 맞닥뜨리고, 그것을 보고, 무언가를 (아마 공포?) 느끼고, 뒤돌고, 건물로 달려가고,
문을 잡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고, 계단을 올라가고, 그러는 사이사이 뒤를 돌아보고, 또 그 사이사이 긴장을 느끼고,...
그러니까, 이게 단편집인 탓도 크겠지만,
전부 몽뚱그렸을 때 결국은 그닥 길지 않은 분량의 시간을 정말 세세하게 쪼개서 묘사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그걸 쪼개는 방식이나 묘사하는 사건사건의 리듬이...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80년대 공포영화스럽다고 느꼈어, 이 책은.
내가 1권을 읽으면서 읽는 속도가 잘 붙어서 놀랐다고 썼는데
아마 그래서 읽기가 수월했던 거겠지 싶어. 자극적인 사건이 빠른 리듬으로 서술되니까.

그리고 아마 이 책 뿐 아니더라도 이런 리듬의 서술을 하는 소설들은 많은 것 같아.
나는 가끔 어떤 소설을 읽다가 이건 소설이라기보다 차라리 영화를 서술하려고 한 글인가? 싶을 때가 있거든.
하다 못해 작가가 영화의 세례에서 무의식적으로나마 자유롭지 못했던 거겠지.


[Son of Celluloid]
도입부는 바베리오라는 범죄자가 경찰에 쫓기는 장면이야.
자신도 모르고 있었지만 뱃속에는 암세포가 제법 크게 자라고 있었고,
도주과정에서 오래된 극장의 뒷편으로 숨어들어갔다가 거기서 죽게 된 거지.
그의 목숨이 그 장소에 녹아 있던 수없이 많았던 환상들과 함께 녹아들어가더니...

그리곤 얼마쯤 뒤, 어느 운 나쁜 날,
심야에 극장에 남아 있던 관객 둘과 종업원 둘이 재수없는 밤을 보내게 되는 거지.
갑자기 화장실의 공간이 서부의 황량한 마을로 변하고, 웬 존 웨인이 나타나서 총을 겨누고,
전화기에서는 페터 로레가 대답을 하다가 돌연 그레타 가르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영화가 현실로 육박하는 거야.
(이것보다 조금은 더 복잡한 내용이지만, 뭐...)

주인공이 제법 살찐 여자라고 나오는데, 킬로로 환산하면 100kg가 넘는?
그런 부분에서 약간 의외성이 있는 설정이려나?

이 편에서는 '영화'가 괴물이야. 물론 인간성을 몸에 두르고 있지.
영화라는 매체는 탄생부터 사람들을 매혹시켰다는 점에서
그것이 의인화된 캐릭터는 꽤 흥미로울만한 구석이 있지. 환상의 집약체잖아?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아들'이 조금 덜 악의를 지닌 존재였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었어.
순진무구한 '환상'이 자신의 본성(?)에 충실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생기는 전개가 더 일의관지하지 않나 했거든.
좀 추상적으로 말했는데 왜 그런 장면이 있어.
화장실이 서부극의 장소로 바뀌는 통에
거기서 일을 보던 등장인물을 '존 웨인'이 버릇이 없다며 쏴버리는 장면이 있거든.

여하간 결말부까지 하여 나름대로 매듭이 지어지는 모습은 좋았는데
오히려 조금 더 매력적일 수 있었던 발상이 전형적인 80년대식 장르물같은 느낌이 된 거는 같네.

[Rawhead Rex]
질Zeal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위치는 글쎄? 영국 어디쯤인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네.
한 마을 청년이 물려받은, 놀고 있던 땅을 경작하겠다고 하다가 거기 봉인되어 있던 뭐... 괴물?을 그만 꺼내버리고
그 괴물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난리를 치고 다닌다는 내용이야. 물론 제목이 괴물의 이름이지.
난리를 치는 과정에서 교회로 쳐들어가서 verger가 뭐 '복사'라는데, 일종의 목사 도우미 같은 거래. 걔도 타락시키고,
아이들도 잡아먹고. 유아살해를 터부시한다는 영미권 문화라고 아는데 꽤 선정적이군! 싶더라고.

교회가 나왔기 때문에 이거는 뭐 종교적인 메세지가 약간은 있는 셈인듯 한데,
저 복사가 타락한 뒤에 내 주인님은 예수보다도 훨씬 전부터 계셨다 운운하기도 하고.
그런 식의 아류 사타니즘은 결국 기독교 거울상의 위악일 뿐이지 않나 싶어서... 뭐 하아품이고.

나는 이런류 괴물이 설치는 내용이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
현대문명이 제공하는 어마어마한 살상능력의 무기들이 괴물들을 걸레로 만들지 않나 싶거든.
해결책은 둘 중 하나겠지, 괴물이 강하거나, 배경이 되는 곳이 낙후되었거나, 고립되었거나 중 하나든 둘이든.
이건 둘 다 아닌듯 한 전개라서 제법 신선하다 생각했는데,
그래서 결말이 좀 김이 빠지더라고. 뭐 저럴거면?; 싶어서.

[Confessions of a (Pornographer's) Shroud]
로니 글래스라는 착실한 회계사의 얘기야.
성실하게 잘 살던 인물이 돈좀 만져보려고 하다가 포르노 사업을 돌리는 일당하고 엮인 거지.
그 사실을 모르고 사업 관계라고 생각하다가, 어느 날 우연히 사업장에 들러서 온갖 도색잡지들을 보곤
충격먹고 대판 싸우고. 뭐... 악당(?)이 연줄이 있었는지 주인공을 오히려 포르노 왕으로 둔갑시켜서
언론에 흘린 거야. 인생 망한거지. 처자식도 다 집을 나가버리고.
그래서 주인공이 복수를 하려고 두 명을 죽인 뒤 결국 암흑가에서 처형당하는데,
이 복수를 향항 원념이... 안치소에 누운 그의 시체를 덮은 천에 빙의하고, 복수를 이어 나간다는... 뭐 그런 내용.

나는 자꾸 영화 <할로우 맨>이 생각났는데,
천쪼가리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는 돌아다는다는 점 때문이겠지.
그다지 트위스트는 없는 전개야. 복수도 잘 마치고. 그런 의미에서는 절정의 만족을 주나?

재미있었던 건 주인공이 도색잡지들을 보고 충격에 빠지는 장면이었어.
그까짓 거 2017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조금 더러운 디씨 갤러리만 가도 뭐...
이제와서는 정말 일상적인 영역이거든. 아마 좀 특별한 사람들에게는 80년대에도 각별하지는 않았겠지.
당장 마지막 단편은 남창 이야기니까.
그렇지만 적어도 이야기 속에서의 관념적 인간이라도
포르노를 보고 충격먹어서 자기 인생을 뒤집어놓을 선택을 한다는 게
착실한 인간상으로 그려지는 걸 보면 꽤 기묘한 느낌을 받게 되기는 하지.
80년대 보통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보게 되는 느낌? 생각해 보면 30년도 전 얘기거든.

[Scape-Goats]
남녀 두 쌍이 요트를 타고 유람하다가 재수없이 한 섬에 부딪쳐서 상륙하게 돼.
지도에도 없던 섬이 갑자기 항로에 나타나서는 뱃머리를 때린 거지.
이들은 꽤 황량한 섬을 이리 저리 둘러 보다가 울타리에 갇힌 양 세 마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풀도 안 자라는 이 섬에 웬 양이? 왜?

왜 김 나는 밥이 올려져 있었다는 이어도 전설같은 게 생각나서
연관된 것이 하등 없는데도 나는 괜히 오싹한 내용을 기대했었는데
그렇게까지 오싹한 단편은 아니었어.

그래도 기본적인 설정이 꽤 매력적이기는 했지.
스포일러인지는 몰라도 저 섬은 결국 뭐였냐면
해류가 절묘하게 만나는 지점이라서 1차, 2차대전을 포함해서 엄청 긴 시간의 온갖 곳에서 흘러온 시체들이
한 곳으로 모여 이루어진 섬이었던 거거든. 저 양들은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희생양이었던 거고.

결말이 좀 재미있었는데 주인공은 죽고 난 뒤인데도 서술은 계속 이어지더라고.
죽음이 끝이 아닌 세계를 그린다는 게 얼마나 희한해?

[Human Remains]
주인공 개빈은 제법 잘 생겨서 그걸로 빌어먹고 사는 남창이야.
어느 날 고객에게 서비스를 주러 그의 집에 따라갔다가, 기묘한 걸 보게 되지.
욕조 속에 담긴, 인간의 형상을 한 이상한 물체?
그 날 뒤로 자기는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면서 해코지를 당하고, 등등...

꽤 뻔하지만, 이건 도플갱어의 이야기야.
인간을 흉내내는 괴물이 등장하고,
사실 원래는 먹잇감이 되었어야 할 주인공은 미모 때문에 다음 모방 대상으로 선택되었던 거지.

이 단편도 결말부가 꽤 재미있는데,
인간 아닌 것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감정과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게 되는...
그런 대비를 잠깐 그리거든.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어.
물론... 사실은 그런 모습들도 전부 인간이겠지만.


여하간, 드디어... 이 책을 완독했네...
거진 10년은 전에 사서 이사다닐때마다 언젠간 읽을거라며 챙겼던 책을 드디어...
체증이 내려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2017.4.7

Clive Barker, Books of Blood vol. 2

이어서 올리는 감상문.
사실 며칠 전 부로 2권까지 읽었는데 이걸 가지고 뭐라고 끄적인다는 게 또 일이더라고.
막상 보면 개발괴발 글이거늘.... 글쓰기의 지난함이여! (하고 폼을 재본다)

2권을 읽으면서 희한하다고 여겼던 것은
우리나라에 출간되었던 이 피의 책 연작이 두 권이었는데,
두 번째 출간된 권이었던 [요괴 렉스]가 연작의 3권을 번역한 것이었다는 사실이야.
왜일까? 2권에 어떤 문제라도 있었던 것일까?

독서를 마친 후의 내 생각은 아마도... 출판사 측에서는 2권이 썩 재미있지 않다는,
그래서 판매량에 영향이 있을 것 같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
그렇게 큰 출판사도 아니었고 (아마 지금은 없어진...듯?) 책을 낸다는 건 어쨌든 모험인 셈이니까.
다시 말해 내 감상은 2권이 그렇게 만족스러운 편은 아니었다는 거지.

[Dread]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을 정말 많이 읽고 싶었어.
왜였는지도 기억 안나지만 뭐 아마 어딘가에서 추천을 들었던 거겠지.
더하여... 제목의 심플함을 봐. 대체 저렇게 단도직입적인 제목을 가진 단편은 어떤 내용을 말해줄까?
두려움이라니... 어떤 기기묘묘한 이야기로 나를 매혹시켜주겠냐 이 말이야.

이야기는 대강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져.
주인공 스티븐, 퀘이드, 셰릴. 이 세명은 대학생인데, 퀘이드라는 인물은 좀 독특한 철학을 가졌어.
뭐... '두려움'의 탐구자? 철학자? 같은 거지. 인간의 실존은 두려움을 바탕으로 하고,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우매한 자들을 자신이 '두렵게 해줌'으로써 계몽시키는? 뭐 그런 삐딱한 인물인 거지.
개인적으로는 여기서부터 조금 핀트가 어긋난 기분이었는데
대뜸 플라톤이나 벤담 따위는 한량의 주절거림 정도라고 비웃는 모습이 되려 나에게는 꽤 같잖아 보였기 때문이야.
인물과 그의 언행이 독자인 나에게 공감을 못 불어넣더라고.

여하간 제법 자기주장이 강한 채식주의자 셰릴과,
어릴 적의 일시적인 청각장애로 트라우마를 가진 스티븐이
이 퀘이드에게 '계몽'되는.... 내용이 대강의 줄기인 것 같네.

기대가 컸는데 거기에 부응이 안되어서 좀 객관적인 판단을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첫 번째 단편부터 조금은 실망스러운 독서였어.
특히 결말부는.... 음.... 홀로 고고히 '가르침을 준다'는 미명 하에 남을 괴롭히고 앉아있던 인물이
제대로 당하는 모습은 나름 고소한 맛은 있었지만,
이 소설은 애초에 그런 골계를 겨눈 작품은 아니란 말이지;
의도에서 벗어난 감상을 하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조금 엇나가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돼, 나는.

[Hell's Event]
런던에서 자선 행사로 경주대회가 열려.
거기에 참가한 달리기 선수들이나, 그걸 보며 환호하는 관중들 그 누구도 몰랐지만,
이 대회는 이면에서 사실 지옥과 지상 사이의 건곤일척의 대승부였던 거지.
(물론 자기 정체를 숨긴) 지옥 대표선수가 승리하면, 지옥이 지상 위에 펼쳐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뭐... 소설에서는 100년? 이라고 한 것 같은데 잠시동안은 다시 인간세가 이어지는 거지.
음... 이 간략한 줄거리만으로도 뭔가 너절한 느낌이 좀 있지 않아?
내가 더 그렇게 보이도록 간추린 것은 같지만 말야.

아마도 이 단편은 다분히 일상적이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심지어 주인공이 몇 번이나 환기를 하거든, 이건 별것도 아닌 자선행사 경주일 뿐이라고)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그런 비틀림에서 착안한 소설이지 싶어.
지옥의 사자라는 애들이 심각한 척 하면 할수록, 일상적인 경주 대회라는 대비 속에서
꽤 희한한 인상을 주는 거지.
하여... 뭘 하려고 했는지는 대강 알겠는데, 아주 매력적인 단편은 사실 아니었지 싶네.

[Jacqueline Ess: Her Will and Testament]
이 단편은 제법 괜찮았어.
재클린 에스는 평범한 가정주부야. 지긋지긋한 일상에 지친 그녀는 결국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고 있던 힘을 깨닫게 돼. 그녀는 뭐라고 하지 그걸? 사이코키네시스? 였던 거지.
죽어버리라고 생각하면 정신과 의사가 목이 픽픽 꺾여 죽고, 뭐 그런 것.
이런 '힘'을 깨닫게 된 그녀는 이 힘을 어떻게 행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배워나가고, 결국 뭐... 좌절하기도 하고.

이렇게 풀어보니 역시 범속한 이야기이지 싶지만,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이거였어.
그 원형을 내 식견으로는 정확히 지목하기는 어렵지만
19세기-20세기초에 소설에서 많이 등장했던 인물의 유형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보바리 부인]으로 대표되는 억눌린 가정주부들이 있는 것 같거든.
이 소설은 내 생각에는 그런 일종의 클리셰를 비틀어 놓은 소설 같아.

권태를 느끼던 가정주부가, 힘을 얻고, 그 힘을 자각하고는 심지어 중반에는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배우기 위해 소설 세계관에서는 손에 꼽힌다는 거부를 찾아가기도 하거든.
권력의 행사를 배우기 위한 거지.
그 힘 때문에 그녀 주위의 남자들은 그녀를 두려워하게 되고, 그래서 매혹당해.
남자와 여자의 관계와 인간이 지닌 권력에 대해 염두를 두고 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네.

[The Skins of the Fathers]
아... 이 단편은 책을 들기 시작한 뒤로 가장 별로인 단편이었는데....
이야기에 축이 없어.
인물도 많고, 사건도 많은데, 정합성도 없고, 결말도 흐지부지야.
아리조나 사막에서 괴물들의 습격을 받은 한 마을...이 그럭저럭 주요 소재인듯 한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사업가? 회사원?의 이야기가 섞이고
그 괴물들에게 강간당해서 괴물의 아이를 낳은 여자와 그 아이의 이야기가 섞이고
그러더니 결말부에서는 그냥 아이도 죽고, 대뜸 괴물들에게 희한한 능력이 있었다는 식으로 다 처리되고,
정작 괴물들은 그냥 사라졌다...는 식이고.
이 단편으로 뭘 보여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네 나는.

굳이 짚을만한 점이라면 괴물들에게 악의가 없었다는 비틀림 정도일까?

[New Murders in the Rue Morgue]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포우의 유명한 단편을 염두에 둔 편이야.
사실 난 포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았거든. 이 편을 읽으려고 예비독서로 포의 단편까지 읽게 됐네.

포우의 단편은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랬는데
이 이야기가 가진 대단한 역사적 가치는 둘째 치고서라도
나는 이렇게 기능적이기만 한 이야기가 썩 매력적인 것 같지 않거든.
그리고 자기 혼자한테만, 그리고 자기 홈그라운드(자신이 주인공인 소설) 안에서만
딱딱 맞아 떨어지는 짜고치는 고스톱에서 판돈 따가는 인물인 주제에
잘난척이나 하는 탐정류 캐릭터(바로 이 뒤팽이 원조라는)도 좀 재수없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포우도 이 소설이 그렇게 찬사를 받는 걸 조금 이해 못했다는 걸 줏어읽은 것도 같고.

여하간, 이 단편의 기본적인 설정은
주인공 루이스의 할아버지의 동생이 오귀스트 뒤팽이었다...는 거야.
엥? 이거 완전 김전일 아니냐?

그렇다고 대뜸 루이스 소년의 사건부가 펼쳐지는 건 아니지만.
시간적 배경은 소설이 쓰여질 당시의 현재인 것 같아, 80년대이고, 주인공은 이미 노쇠한 70대 노인이지.
노년에 회화로 예술계에서 명망을 얻게 된 주인공은 젊은 시절 친구였던 필립이 살인죄 누명을 썼다는 소식을
필립의 동생 캐서린에게 전해듣고, 어떤 내막이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파리에 도착하는 거지.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향수를 진하게 뒤집어 쓴, 면도날을 지니고 다니는 거구가 자꾸 모습을 드러내고...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에서는 범인...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그 인물의 동기가 굉장히 이해가 안 갔는데, 그게 꽤나 열쇠가 되는 지점이라서
결국 단편 자체가 조금 아리송한 기분이 있어.
애초에 일종의 원작이 존재하는 패러디물인 상황에서
원작에 대한 큰 존경이 없는 나로서는 거기서 어떤 맛을 찾기도 어려웠고.
하여 아주 흥미로운 독서는 아니었던 것 같네.

2권의 감상을 이렇게 대강 끄적여 봤지만,
드디어 읽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었지 아주 즐거운 독서는 사실은 아니었어.
안타까운 일이네;

지금까지 읽으면서 특기할만 했던 건,
읽는 속도가 꽤 잘 붙는 책이라는 거야.
아마도 작가인 클라이브 바커가 글을 많이 꼬지 않고 묘사 위주의 서술이 많은 탓일까?

2017.4.2

Clive Barker, Books of Blood vol. 1

클라이브 바커는 사실 한국에서는 소설가보다는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겠는데,
요즘은 그런 커뮤니티를 들락날락거리지 않고 있어서 얼마나 회자되지 잘 모르겠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공포영화 필견 리스트에 꼭 들어가던 <헬레이져>시리즈를 만든 사람이다.
뭐... 80년대 중반 이 [피의 책]연작으로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자기 작품이 영화화된 꼴이 맘에 차지 않아
직접 메가폰을 잡아서 저 <헬레이져>를 만들었다는 건 감초처럼 따라붙는 설명이었고....

글쎄, 그보다 조금 더 뒤 세대라면 아마 [클라이브 바커의 언다잉]이나 [제리코]같은 게임의 세계관을 다듬어준
감수자...이려나? 여튼 그런 역할로서도 나름대로는 유명할지도.
개인적으로는 이 [언다잉]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했었긴 해도, 그 재미가 모두 클라이브 바커의 덕은 아닐 거라고는 생각해.

다재다능한 사람이라서 자기 책의 삽화나 표지를 직접 그리기도 하고,
<헬레이져>로 유명해진 특유의 사디즘적 디자인으로 피규어를 발표하기도 하고 (물론 디자인만 본인이 했겠지) 등등
나름 러다이트 신념이 있어서 컴퓨터도 잘 안만지려 하고 커밍아웃한 게이인
하고싶은 건 두루두루 하고 사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여하간 이 양반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이 [피의 책]은 한 권에 대강 5편 정도의 단편이 수록된 구성으로
총 6권이 나온 연작인데, 뭐 연작이라고 해봐야 같은 타이틀로 묶였다는 거지 딱히 뭐 공유되는 지점은 없어.
84년 첫 권이 출간되고 나서 장르 판에서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작품이라는데
가장 두드러진 찬사는 역시 호러소설의 마왕 스티븐 킹이 "나는 호러의 미래를 보았다"고 상찬했던 거겠지.
내가 가진 책의 앞장을 보니 "그는 심지어 나까지 겁먹게 한다... 나는 밤에 혼자 이 책을 읽지 못 하겠다..." 등등
거장 소설가다운 구라로 칭찬을 늘어놓는 스티븐 킹의 몇 마디가 적혀 있기도 하네.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건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된 적이 있기 때문이야.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한창 들락날락거리던 호러 커뮤니티.... 아마 호러존이었던가? 아는 사람은 알겠지.
여튼 거기서 드디어 클라이브 바커의 이 대작이 우리나라에도 출간된다며
누군가 글을 올렸었거든. 그 반짝거리던 미사여구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문구는 클라이브 바커의 날고기와 같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문체를 잘 살리지는 못했다는 평이었는데,
거기서 감탄 또 감탄을 한거지 나는. 아니 그런 문체가 뭔데? 그리고 그런 문체를 어떻게 감지하는데? 저 사람은 원서를 읽어?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2305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5420
여하간 그닥 재미가 좋지는 않았는지 두 권만 출간되고 말았긴 하지만,
그래도 용돈 받아쓰는 학생 주제에 용돈 모아서 두 권 모두 사놓을 만큼의 뭐... 수집욕이겠지, 는 있었거든.
나로서는 그런 개인적 경험 때문에 조금의 애착이 있는 책인 셈이야.
결국 국내 출간은 요원하다 싶어진 상황에서 원서라도 사보자 했던게 이미 몇 년 전이고.
이제야 읽어보기 시작한 셈이지 사실.

위에 사진을 올린 책은 1,2,3권을 묶은 합본인데,
희한하게도 내가 찾아볼만한 데서는 4,5,6권 합본은 없더라고?
글쎄, 이 시리즈는 영미권에서도 생각보다 지지를 오래 받은 책은 아니었던 셈인 걸까?
본론만큼 길어진 듯한 서론은 여기서 그만 두고.

1권
사실 1권은 접한 사람이 제법 될 것 같아.
이미 출간이 되기도 했고, 심지어 다른 출판사에서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개봉에 즈음해서
한몫 땡겨보려 했는지 다시 출간하기도 했었거든.

[The Books of Blood]
이 이야기는 연작의 그야말로 도입부를 이루는 내용이야.
귀신들린 집에서, 심령현상을 연구하는 연구원과 귀신들린 척 하는 청년 사이의 아슬아슬한 거짓말 대결?
같은 내용인데, 뭐 그 사이에는 남녀 사이의 성적인 긴장도 있고... 대충 그런 식이지.

그런데 뻔한 반전은 이 집이 사실 진짜로 귀신들린 집이었다는 거지 ㅋㅋㅋㅋ 뭐, 영혼들이 지나는 일종의 정류소?
이 청년이 재수없이 영혼들에게 붙들리고는, 오랜만에 피와 살을 접한 이 영혼들이 자신들의 갈망을 담아서
이 청년의 살 속에 자기 이야기를 손톱으로 파서 긁적여놓는 거지.
이 연작은 그 이야기야. 살 위에 피로 각인된 책. 당신들은 피의 책을 읽는다는 거지.

[The Midnight Meat Train]
한밤의 식육열차? 로 번역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꽤 인상에 남는 단편이야. 실제로 지지도가 높은 편으로 알고 있고, 심지어 꽤 최근에 영화화도 됐었지.
뉴욕에 거주하는 유태인 카우프만이 주인공이고,
극중에서는 정육점의 고기가 그렇듯 미끈하게 '도축'된 시체가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지지. 연쇄살인.
이 살인마의 이름은 마호가니인데, 나름의 사명을 띄고 있는 걸로 묘사돼. 점점 늙어가는 자기 몸뚱이가
작업을 지연시킨다고 생각하지. 여느 날과 같이 사냥에 나선 그는 심야 지하철 칸에서 먹잇감을 찾아서 작업을 시작하고,
재수없게도(?) 카우프만이 야근 끝에 그 열차에서 졸고 있었던 거지.

이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80년대 유행했던 슬래셔 장르를 비틀은 내용이라고 생각해.
왜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같은거 말이야.
장소의 배경은 시골이 아닌 도시이고, 주인공은 처녀가 아닌 아저씨고,
살인마는 괴력의 거한이 아닌 왠 배나온 아저씨고(심지어 뭐... 여자의 입술을 가졌다?는 묘사도 있음)
살인의 이유는 정신이상을 가장한 젊은이들의 방탕의 단죄(?)가 아닌 나름의 이유가 따로 있고
살인의 방식 또한 무차별적인 난도질이 아니고 (이 또한 목적이 있어서지만) 전문적인 백정의 손길이었거든.
심지어 마호가니가 자신이 점점 늙어가기 때문에 후계자가 필요하고, 자기 노하우를 전수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어.

개인적으로는 몇 번 읽어봤지만 결말부는 이해가 조금 안 되는 편인데,
어딘가에서는 이걸 사회의 은유라고 하는 모양이지만 역시 이해는 잘 안 가.
카우프만이 대체 뭔 본 건지?;

이제와서 내 생각에는 위에 말했던 날고기에서 피가 떨어진다느니 하는 문체가 이 단편을 보고 하는 말이었지 싶기도 해.
시체가 난무하고 살을 찢고 베어내는 묘사가 꽤 선연하게 이루어지고 있거든.
지금도 기억에 남는 묘사 중 하나는 카우프만이 도축된 시체를 처음 보았던 장면인데
그의 눈보다도 내장이 먼저 참극을 보고는 내용물을 게워내려고 했다는 식의 서술이 있거든.
속속들이 한겹한겹 모두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고 그 울렁거리는 한겹마다
고통이 새겨져 있는 그런 존재로서의 인간을 그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 작가는.
인간의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의 속성을 상기시켜주고 싶어한다는 느낌?
세상에 누가 불닭볶음면같은거 먹고 나서 같은 때가 아니고서야 자기 내장을 의식하면서 살겠어.

[The Yattering and Jack]
여기서 야터링은 하급 악마의 이름이고, 잭은 비범한 수준으로 평범한 인간의 이름이야.
둘은 다른 누구도 모르는 대결을 펼치는데,
야터링은 잭을 광기로 몰아넣어야 하고, 잭은 그걸 참고 또 참아서 야터링을 안달나게 만들어서
뭐, 악마의 법칙 따위가 있는 모양이지? 절대 대상에게 직접 손을 대서는 안 되고, 배정받은 '집'의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그걸 어기게 해서 자기 종으로 삼아야 되는거지.
물론 그게 목적이라기 보다는 재수없이 자기한테 달라붙은 악마를 쫓아내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거지만.

근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이 잭이 어마어마하게 둔감한 인간이라는 거지.
자기 부인이 바람피우는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하고도 그저 "케 세라 세라" 한마디 하고는
그런가보다~ 하는 통에 오히려 부인이 제발 차라리 나한테 화라도 내라면서,
당신한테는 내가 그것밖에 안되냐면서 울부짖다가 결국 자살해도 무덤덤한 그런 인간이니까.
야터링이 미쳐 나가는 거야. 지옥에 가서 벨제붑한테 제발 이놈 담당에서 빼달라고 애걸복걸을 하는데
뭐 높으신 분들 생각은 따로 있는 거지. 까라면 까야 되니까.
그래서 머리를 쥐어 짜내서 폴터가이스트 현상을 일으켜도
잭은 그냥 옆집놈들이 시끄럽네, 이러고
건물이 좀 기울었나보네, 이러고.
고양이를 세 마리나 갈아치울 때까지
변기물에 빠뜨리고, 불에 태워서 죽이고, 아예 그냥 터뜨려서 온 내장을 방 안에 흩뿌려 놓아도
망할놈의 개들이 집에 들어왔나, 하는 놈인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따로 살던 잭의 두 딸이 명절을 맞아서 집에 찾아온다고 해.
여기서 이야기가 재밌어지는 거지.

이 이야기는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파우스트]를 참조하는 것일까?
악마와의 계약이나 대결에 관한 내용은 꼭 원전이 파우스트 박사의 전설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여하튼 저렇네.
그런데 야터링도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고, 잭도 파우스트가 아니지.
굉장히 질 낮은 버전의 파우스트인 셈이고, 그래서 소극이 되는 거겠지.
가볍게 읽기 좋은 단편이야.

[Pig Blood Blues]
소년원에 새로 부임한 전임 경찰 레드먼이 주인공이야. 새로 부임은 했는데,
기존에 있던 직원들은 묘하게 불친절하고, 소년원이니 만큼 껄렁거리는 애새끼들 틈바구니에서,
유약한 녀석을 발견하고, 이 녀석을 도와야겠다고 맘을 먹는데, 뭐.... 기묘한 분위기, 음모가 있었던 거지.
이 소년원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
상황의 설정이나 내용의 전개가 너무 전형적이어서 80-90년대의 평범한 스릴러/공포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어.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도 결말부가 조금 아리송한데,
대체 왜 그런 전개가 되는 건지 나로서는 파악이 안되더라고;
분위기는 나름 괜찮고, 내용의 전개도 속도감 있어서 나름 재밌게는 읽었지만.
할 말이 많지 않네.

[Sex, Death, and Starshine]
아... 이 단편은 정말 좋았어.
셰익스피어의 십이야를 공연하려는 소도시의 극장 이야기야,
특히 그 극의 감독이 주인공인데. 성이 캘로웨이 같은데 이름이 기억 안나네.
굳이 따지면 이 이야기는 반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나름대로 예술을 하려는 사람이 현실 앞에서 겪는 지지부진한 엿같음? 비슷한 거야.
이 감독은 나름대로 뭔가 해보고 싶은데
극장주는 돈만 밝히는 놈이고 연기자들은 형편없고, 자기 잘난 맛만 알고,
결정적으로 여주인공 비올라를 맡게 된 여배우는 그야말로 형편없다는 말도 부족한데
왕년의 드라마 스타인 것 플러스 자기 좆을 빨아주는 여자라 이게 진퇴양난인 거지.
예술적으로 완성도있는 작품을 상연하고 싶은 마음과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거야.

여기서 리치필드라는 인물이 등장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 인물은 대뜸 '오직 예술'을 설파하는 거지.
본인은 예전 이 극장에 관계하던 사람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번 상연이 이 극장의 마지막이 될 거란
정보를 접수했다는 거지. 그래서, 자기가 아끼던 극장의 마지막 공연이 그런 여배우로 엉망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자기 부인인 콘스탄치아가 그야말로 완벽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설득해.

이게 중반부까지는 무미건조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제법 환상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소설이거든.
결론적으로는 이 이야기는 유령 극단의 이야기가 되는데,
걸어다니는 시체가 되어버린 인물들이 그럼에도 '우리는 삶을 연기하지!'라며 끝을 맺는 장면이
꽤 재미있더라고. '연극'이라는 단편의 주 소재와 맞물려서.
인간이 아닌데 인간인 척 하는 존재들을 그림으로써 도리어 '인간'이 무엇인지를 좀 보여주는 느낌?

[In the Hills, the Cities]
이 단편은 유고슬라비아 지방을 여행하던 한 커플이 겪는 이야기야.
이 둘은 남자, 게이 커플인데, 뭐 그게 엄청 이야기에 중요한 건 아니고.
지도에도 없는 희한한 곳으로 잘못 들어온 이들이 맞닥뜨리게 된 건....
어마어마한 참극이었던 거지.
이게 스포일러를 안치고서는 내용을 설명하기가 어렵네;

여하간 이 이야기에서 정말 흥미로운 건
내용의 주 소재가 되는 어떤 존재(?)인데
방금도 위에서 썼듯이 인간 아닌 것이 인간으로 화하는 과정...이겠지, 이것도.
그 상상력 자체가 놀랄만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
그리고 그게 잘못되면서 벌어진 아수라장 또한... 그정도로 대규모 인명피해가
악의 없이 일어날 수 있었다는 전개는 묘한 비틀어짐이 있는 거지.
보통은 그런 참극의 묘사는 어떤 악마성을 전제하거든. 뭐, 히틀러라던가.

혹자는 말도 안된다고 하겠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여하간 그 상상력의 크기라는 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단편이네.

이 단편 초반부에는 질펀한 게이 섹스의 묘사가 아주 쬐끔 등장하는데
으....; 서로 키스를 나누며 잡잘한 정액의 맛을 느꼈다느니 하는 글귀를 읽고 있노라면
작가는 자기가 쓰는 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거거든.
클라이브 바커는 게이란 말이야. 본인의 체험이 반영되지 않았을 것 같지 않단 말이지.
으....;


사실 2권까지는 읽어서 쓰는 김에 2권도 쓰려했는데 지친다;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도 많았는데 어째 쓰면서 지치니 그게 다 나오지도 않네
여튼 2권은 다음에 다른 글을 쓰기로 하고....
스압글인데 혹시 읽어준 형들 있으면 감사감사

2017.4.1

클라이브 바커, [피의 책] 중에서...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집이다. 읽고 나서 글도 짧게 올려야지 언젠가는 ㅋㅋ;
여튼 요즘 이걸 붙들고 있는데, 재밌는 글귀가 있어서 올려보려고.
2권에 있는 단편 Jacqueline Ess : Her Will and Testament에서 발췌하는 것.

She remembered the old joke. Masochist to Sadist: Hurt me! For God's sake, hurt me! Sadist to Masochist: No.

그녀는 오래된 농담 하나를 떠올렸다. 마조히스트가 사디스트에게 말했다. 날 괴롭혀줘! 제발! 사디스트가 말했다. 싫어.

뭐.... 철두철미 100% 마조히스트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런 인간에게는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되려 고통일 수 있을까?
웃기더라고.

(스포) 케빈 브룩스, 벙커 다이어리

  얼마 전에 독갤에서 누군가 추천을 하길래 흥미롭겠다고 생각해서 샀고, 읽었다. 기대보다는 평이했다. 어쨌든 추천사가 '좋다', '암울하다', '충격적이다' 정도의 추상적인 형용사여서야 가끔은 속았다는 감상...